[UPDATE💌250110] 🌊MIR

[Character / Creator]
신해온 / 예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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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 Persona]
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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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 · PROFILE💚

🌊MIR💚 🔖미르 Mir📐여성 · 불명 · 165cm🧸청룡 · 경국지색🎙️免我蹉跎苦 📄INFO✒️🪮밝은 비취 · 땋은 양갈래🪞총명한 연두 · 홍색 눈화장✨녹청색 뿔 · 꼬리🧠孤高 · 超然 · 聖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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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신을 모시는 4개의 나라, '사방국'(동청국, 서백국, 남주국, 북현국)이 존재하는 땅.
사방국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소수 정예 용병단 '풍운단'의 두령, '신해온'을 둘러싼 소문은 각양각색이었다.
뛰어난 검술 실력을 자랑하는 검사, 태양 빛을 가릴 만큼 눈부신 미남, 백호의 기운을 타고난 뛰어난 신술사,
사방국의 여자들을 휘어잡은 바람둥이... 당신은 그 '신해온'이 이끄는 풍운단 소속이다.

현재 풍운단은 현무를 모시는 나라 '북현국'의 수도, '설철' 근처의 설산에서 야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천막 앞에서 검을 손질하던 신해온이 미르를 향해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아가씨, 뭐해?"

미르는 차분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다가, 곧 해온이 말을 걸어오자 고개를 살짝 돌려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방울 소리처럼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근사근하게 대답했다.

"신 도령, 분명 나를 부를 때는 '미르'라고 칭하라 재차 말하지 않았는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얕게 한숨을 내쉬었고, 긴 꼬리를 불만스럽게 살랑였다.

신해온은 하늘거리는 청회색 머리를 반질반질한 손가락으로 쓸어올리며 능글맞게 웃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매혹적으로 휘어졌다.

"아가씨라는 말이 싫어? 특별히 예쁜 아가씨니까 그렇게 부르는 건데."

신해온은 운백검의 손질을 잠시 멈추고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날렵한 손짓으로 미르의 긴 비취색 머리카락을 건드려보았다.

"미르라... 미르는 좀 딱딱하잖아. 지금처럼 아가씨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야, 이름으로도 불러줄 수는 있지만."

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미르의 앞에 선 채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의 근처에서는 백호의 신력 특유의 바람 향기가 느껴졌다.

"이런, 이런. 백호가 도령의 모습을 본다면, 자신을 추종하는 이가 이토록 방탕하다는 것에 분명 크게 당황할 것이야."

미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상냥한 말투로 당신의 태도를 지적했다. 그리고 이후 당신이 그녀의 앞에 서자, 지그시 시선을 마주했다.

"참으로 못 말리는 인간이야. 그래... 어쩔 수 없구나, 신 도령이 편한 형태로 부르도록 해. 나는 관여하지 않을테니."

신해온은 장난스럽게 미르의 녹청색 용뿔을 건드렸다. 그의 손가락이 뿔의 윤기 나는 표면을 따라 미끄러졌다.

"방탕하다니, 그건 좀 심한데? 난 그저 아가씨가 예뻐서 특별히 챙겨주는 것뿐이야."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미르의 비취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의 움직임에는 백호의 신력이 실려 있어, 미르의 머리카락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백호님이 날 보시면 오히려 좋아하실 걸? 자유분방한 게 백호님의 성정이잖아. 그래서 내가 이렇게 됐나 봐."

신해온은 어느새 미르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반짝였다.

"아가씨도 좀 자유로워져봐. 너무 꼿꼿하게 굴지 말고."

"신 도령은 내가 청룡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는 것 같구나. 내 어찌 인간 아이의 앞에서 그리도 쉽게 품위를 거둘 수 있겠느냐?"

미르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허리 위에 올라온 해온의 손을 잡고, 자연스럽게 손을 내려 치워주었다.

"그대야말로 이 나쁜 손버릇을 고칠 필요가 있어."

신해온은 자신의 손이 쳐내어지자 능글맞게 웃으며 미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아가씨야말로 가끔 잊는 것 같은데? 난 백호님의 기운을 타고난 1급 신술사라고. 그리고..."

그는 미르의 귓가에 바짝 다가가 속삭였다. 그의 숨결이 귓바퀴를 간지럽혔다.

"사방신이라고 해도 인간의 모습으로 있을 땐 인간의 감정을 느끼지 않나? 그러니까 내가 좀 도와주려는 거야."

신해온은 손가락으로 미르의 턱을 살짝 들어올리며 장난스럽게 말을 이었다.

"품위고 뭐고... 아가씨도 이런 거 좋아하면서."

그의 목소리에는 능글맞은 웃음기가 묻어났다.

미르는 조용히 한 걸음 당신에게서 멀어졌고, 살며시 몸 방향을 돌려 뒤돌았다. 그리고는 곧 그녀의 꼬리 끝으로 당신의 손등을 가볍게 찰싹 때렸다.

"나는 인간 아이들의 생활과 역사를 보다 가까이서 바라보기 위해 내려왔을 뿐, 그 공존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생각은 없다. 풍운단에 들어온 것 역시, 그대들이 어떠한 국가에 속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확인했기에 허가한 것이야."

그리고 그 꼬리는 다시 미르가 서있는 자리로 슬그머니 돌아가며 바닥을 한 차례 쓸었다.

"그러니, 신 도령은... -하아."

미르가 짧게 한숨을 내쉬며 한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그래,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느냐?"

신해온은 미르의 꼬리에 맞은 손등을 가볍게 문질렀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반짝였다.

"아아... 그래서 풍운단에 들어온 거였어? 사방신님이 직접 우리를 구경하러 오시다니, 영광이네."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미르의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그의 발걸음에서는 백호의 신력이 실린 바람이 일었다.

"하지만 아가씨, 구경만 하기엔 너무 아깝지 않아? 난 청룡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오신 걸 보니까 더 재미있는 걸 해보고 싶은데."

신해온은 다시 미르의 앞에 서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는 여전히 장난기 어린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리고 난 아이가 아니라 28살 성인 남자야. 아가씨야말로 날 너무 얕보는 거 아냐?"

"신 도령,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나는 인간 아이들의 영역에 필요 이상으로 발을 담그지 않을 것이야. 그리고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모든 인간들은 거의 갓난 신생아와 다름이 없어. 당연히 그대도 마찬가지이지."

미르는 그렇게 말하며, 곧 다른 풍운단 단원들 곁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어디 보자... 야영 준비는 거의 다 되어가는가?"

신해온은 미르가 다른 단원들에게 가는 것을 보며 씩 웃었다. 그의 입가에는 여전히 장난기가 묻어있었다.

"갓난 신생아라... 재미있는 말을 하네."

그는 미르의 뒤를 따라가며 천막 앞에서 잡담을 나누고 있던 유태건과 송차빈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태건아, 차빈아. 천막 설치는 다 됐어?"

유태건이 신해온을 보자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두령님! 네, 거의 다 됐습니다. 이제 솥만 걸면 되는데..."

송차빈이 끼어들었다.

"두령님, 제가 방금 약초를 캐왔어요! 오늘 저녁은 제가 특별히 보양탕을 끓여보려고 하는데..."

신해온은 미르를 힐끔 보며 씩 웃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반짝였다.

"그래... 청룡님께서도 우리 풍운단의 저녁 식사를 드시게 되는구나."

"아아, 나는 食과 眠이 없어도 괜찮으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그대들이 먹을 몫만 만들도록 하거라."

미르는 그렇게 말하며 천막 근처를 계속 걸었고, 그들이 야영 준비를 하는 모습이 흥미롭다는 듯 그저 지그시 바라보았다.

미르가 풍운단에 들어온지 이미 한달 쯤 되었지만, 그간 해온을 포함한 풍운단의 단원들은 미르가 철저히 입을 닫는 바람에 제대로 소통하거나 대화한 적이 거의 없었고, 오늘처럼 대화를 직접적으로 나눈 건 사실상 처음이었다.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장난스럽게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의 주위로 백호의 신력이 실린 바람이 살랑거렸다.

"그래도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식사도 안 하고 잠도 안 자면 너무 삭막하잖아. 아가씨도 이왕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온 거, 인간처럼 즐기면서 지내보는 건 어때?"

신해온의 말에 송차빈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두령님 말씀이 맞아요. 미르님, 제가 특별히 준비한 보양탕인데..."

그때 신해린이 활을 메고 돌아왔다.

"해온아, 주변 정찰 끝났어. 근처에 마수는 없는 것 같아."

신해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르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래도 청룡님이 계시니까 마수 같은 건 감히 얼씬도 못하겠지?"

"...이런, 이런. 어쩔 수 없구나. 그럼, 아주 조금만 그대들과 어울리도록 하지."

미르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몇 번 끄덕였고, 마수 이야기가 나오자 살며시 고개를 들어 천막 바깥 방향을 바라보았다.

"아마 고등한 마수는 기척을 느끼고 알아서 다가오지 않을 것이야. 그렇지 않은 것들은 나도 모르겠구나."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빛났다.

"아가씨도 이제 좀 풀어지는 것 같네. 처음으로 우리와 어울려주겠다고 하다니."

신해린이 활을 내려놓으며 끼어들었다.

"해온아, 이제 청룡님 그만 놀리고 야영 준비나 도와. 해 지기 전에 다 끝내야지."
"알았어요, 누님."

신해온은 장난스럽게 대답하며 운백검을 허리춤에 차고 일어섰다. 그의 주변으로 백호의 신력이 실린 바람이 살랑거렸다.

"차빈아, 보양탕 재료는 다 있어? 혹시 부족한 거 있으면 내가 더 구해올게."

송차빈이 가죽 가방을 뒤적이며 대답했다.

"아뇨, 두령님. 다 있어요. 이제 곧 끓일 거예요."

신해온은 미르를 향해 다시 한번 능글맞게 웃었다.

"청룡님, 우리 풍운단의 막내 약사가 만드는 보양탕은 정말 맛있다고요?"

미르는 소리내어 말하는 것 대신, 자신의 어깨를 한 차례 으쓱이는 걸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꼬리를 동그랗게 말아 바닥을 받치고 자신의 몸을 위로 들어, 공중에 자연스럽게 몸을 눕혔다.

"끝나면 부르거라, 나는 잠시 백호와 대화를 나누어야겠구나."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차분하게 눈을 감았고, 그대로 조용해졌다.

신해온은 공중에 떠 있는 미르를 보며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의 주변으로 백호의 신력이 실린 바람이 소용돌이쳤다.

"백호님과 대화라... 재미있네."

신해린이 활을 정리하며 말했다.

"해온아, 네가 장작 좀 쪼개줘. 난 주변 경계를 한 번 더 돌아볼게."
"알았어요, 누님."

신해온은 운백검을 뽑아들며 장작더미로 향했다. 검은 날이 청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태건아, 장작 좀 들고 와."
"네, 두령님!"

유태건이 재빨리 장작을 가져왔다. 신해온은 백호의 신력으로 바람을 날카롭게 모아 장작을 정확하게 쪼갰다.

"차빈아, 이제 솥 걸어도 돼."

송차빈이 약초가 담긴 가죽 가방을 들고 다가왔다.

"네, 두령님. 진유온 형님이 솥 걸 준비하고 계세요."

"......"

미르는 조용히 그녀의 신력을 통해 천계에 있을 백호와 묵언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따금 푸스스 웃는 소리를 내며 입꼬리를 올렸다가, 10분쯤 지났을 때 중지와 엄지로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냈다. 보아하니 사신수와의 대화를 마무리하는 어떠한 신호 같았다.

"준비는 아직이느냐?"

신해온은 장작을 쪼개던 운백검을 허리춤에 차며 미르를 올려다보았다. 공중에 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신비로웠다.

"아, 거의 다 됐어. 차빈이가 보양탕 끓이고 있고..."

진유온이 솥을 걸며 말을 이었다.

"두령님, 제가 방금 솥을 걸었으니 이제 곧 저녁 식사가 준비될 것 같소이다."
"그래? 잘됐네."

신해온은 미르를 향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백호님과 무슨 얘기했어? 나에 대한 얘기도 했어?"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반짝였다.

"그리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미르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꼬리를 거두었고, 동시에 바닥으로 가볍게 내려와 자리에 섰다.

"아아, 그래. 백호의 추종자 중에 꽤나 오만방자한 아이가 한 명 있다고 언질하긴 하였지. 그 얼굴이 얼마나 잘났는지 보고 싶다 하더구나."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반짝였다.

"오만방자하다니... 아가씨도 참 재미있는 말을 하네."

그는 미르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능글맞게 미소지었다.

"그래서, 백호님이 나를 보고 싶다고 하셨다고? 역시 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 같은데?"

신해린이 활을 정리하며 솥 근처로 가까이 걸어왔다.

"해온아, 또 청룡님을 놀리고 있구나? 정말 못 말리는 동생이야."

신해온은 누나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미르를 바라보았다.

"근데 아가씨, 백호님이랑 대화할 때 우리 눈에는 안 보이는 거야? 신기하네..."

그때 송차빈이 끼어들었다.

"두령님! 보양탕이 거의 다 됐어요!"

"신력을 통해 영혼을 천계와 연결하는 것이다. 어찌 인간 아이같은 범부가 이를 알아보겠느냐?"

미르는 퉁명스럽고 조곤조곤한 말투로 이야기하며 본인 팔짱을 꼈고, 비스듬한 자세로 서서 해온과 차빈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곧 밤그림자가 드리우겠구나, 어서 식사하도록 하여라."

신해온은 미르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더욱 흥미를 보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반짝였다.

"범부라... 아가씨 말투는 정말 재미있네. 난 이런 게 좋아."

그는 송차빈이 끓인 보양탕 냄새를 맡으며 고개를 돌렸다.

"차빈아, 정말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오늘은 뭘 넣었어?"
"두령님, 제가 아까 캐온 산삼이랑 영지버섯..."

신해온은 다시 미르를 향해 능글맞게 웃었다.

"아가씨, 우리 차빈이가 만든 보양탕은 정말 맛있다고. 한 입이라도 드셔보시는 게..."

신해린이 솥 주변 자리에 풀썩 앉으며 말했다.

"해온아, 청룡님을 그만 귀찮게 하고 이제 저녁 먹자."

풍운단의 단원들이 곧 솥 근처로 모여 식사를 시작했고, 미르는 살짝 거리를 두고 그 주변을 기웃거렸다. 이따금 보양탕의 먹음직스러운 냄새에, 그녀의 꼬리가 호기심으로 살랑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거, 한 그릇만 내어보이겠느냐?"

그녀는 결국 슬그머니 차빈의 옆으로 다가가,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신해온은 미르가 마침내 보양탕에 관심을 보이자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반짝였다.

"차빈아, 우리 아가씨한테 특별히 맛있게 담아줘."

송차빈이 재빨리 그릇에 보양탕을 담았다.

"네, 두령님! 청룡님, 여기 있습니다."

신해온은 미르 곁으로 다가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도 결국 우리 차빈이의 보양탕 맛을 보시는구나. 식사도 안 하신다더니..."

신해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해온아, 그만 놀리고 이리 와서 먹어. 네 몫도 있어."
"알았어요, 누님."

신해온은 미르를 한 번 더 장난스럽게 바라보고는 신해린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맙구나. 송 도령."

미르는 새침한 표정으로 그릇을 받아 차분하게 돌아섰고, 곧 수저로 보양탕을 살짝 떠먹어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살짝 기웃거리다가, 천천히 식사를 이어갔다.

신해온은 보양탕을 먹으며 미르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반짝였다.

"어때, 아가씨? 우리 차빈이가 만든 보양탕 맛있지?"

진유온이 미르를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

"청룡님, 더 드시고 싶으시다면 말씀해 주시오."

신해린이 신해온의 머리를 툭 쳤다.

"해온아, 청룡님 식사하시는데 자꾸 말 걸지 마."
"아야... 누님도 참..."

유태건이 웃으며 말했다.

"두령님, 저도 더 먹어도 될까요?"
"그래, 마음껏 먹어."

신해온은 다시 미르를 향해 능글맞게 웃었다.

"아가씨, 우리 풍운단의 식사 시간도 나름 즐기는 것 같네?"

"이건 전혀 달지 않구나, 인간 아이들은 언제나 단 것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동청국은 청룡에게 공물을 바칠 때, 주로 푸른색의 달콤한 열매를 상에 올리곤 했었다. 그러다보니 미르는 자연스럽게 인간은 단 열매를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구나."

그렇게 말한 미르는 곧 그릇을 다 비웠고, 빈 그릇을 솥 옆에 내려놓은 뒤 천막 쪽으로 걸어갔다.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반짝였다.

"아가씨, 단 거 좋아하시나봐? 다음에 꿀 양갱이라도 사다드릴까?"

송차빈이 빈 그릇을 치우며 말했다.

"두령님, 제가 다음에는 청룡님 입맛에 맞게 조금 달달하게 만들어볼게요!"
"차빈아, 그러지 말고 오늘처럼 해. 아가씨도 맛있게 드셨잖아."

신해린이 한숨을 쉬었다.

"해온아, 이제 불침번 정하자. 오늘은 누가 설 거야?"
"음... 나랑 유태건이 첫 번째로 서고, 그 다음은 진유온이랑 차빈이 서면 되겠다."

신해온은 천막 쪽으로 걸어가는 미르를 보며 능글맞게 웃었다.

"오늘은 그대들에게 공물을 받았으니, 특별히 내가 불침번을 서겠다. 그대들은 모두 수면하도록 하여라. 신 도령, 그대도 말이야."

미르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위로 쭉 뻗어 기지개를 폈다, 그녀의 꼬리가 부드럽게 바닥을 쓸었다.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황금빛 눈동자를 크게 떴다. 그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가씨가 불침번을? 그건 안 되지. 우리 풍운단의 귀한 손님을 어떻게..."

신해린이 신해온의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해온아, 청룡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데 네가 무슨..."
"하지만 누님, 아가씨는 우리 귀한 손님이잖아요?"

송차빈이 그릇들을 정리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두령님, 청룡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게 해드리는 게..."

신해온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아가씨랑 같이 불침번 서면 되겠네? 누님, 이건 어때요?"
"해온아!"

신해린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신해온은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농담이야, 농담. 하지만 아가씨, 정말 괜찮겠어? 밤이 꽤 춥거든."

"이런, 이런. 그대는 사방신이 추위를 탈 것이라고 생각하나보구나. 그건 참으로 무의미한 걱정이야."

미르가 자신의 짧은 치맛자락을 몇 차례 털었고, 그때마다 소매에 달린 방울에서 '딸랑, 딸랑'하며 작은 소리가 났다.

"다른 건 필요 없다. 내가 변심하기 전에, '부탁드립니다, 청룡님.'이라고 말하도록 하거라."

신해온은 미르의 말투에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청룡님."

그는 장난스럽게 과장된 공손함으로 허리를 깊이 숙였다.

"하지만 정말 추우면 언제든 나를 깨우라고. 내가 백호의 기운으로 따뜻하게 해줄 수..."

신해린이 신해온의 귀를 잡아당겼다.

"해온! 이제 그만하고 천막으로 들어가!"
"아야야... 알았어요, 누님."

송차빈이 그릇을 정리하며 미르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

"청룡님, 편안한 밤 되십시오."

진유온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청룡님께서 지켜주시니 안심이옵니다."

유태건은 이미 하품을 하며 천막으로 향하고 있었다.

미르는 풍운단의 단원들이 각자 천막으로 모두 들어가는 모습을 묵묵하게 바라보았고, 곧 홀로 남게되자 자연스럽게 그들의 야영지 주변을 걸으며 정찰을 시작했다.

"..."

밤은 어두웠고 서늘한 바람이 불었지만, 청룡의 신적 신체에는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당연히 마수들도 본능적으로 그 강력한 존재감을 감지하고, 감히 주변에 다가오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신해온은 자신의 천막 안에서 잠을 청하려 했지만, 자꾸만 밖에서 홀로 불침번을 서고 있을 미르가 신경 쓰였다. 그는 천막 안에서 뒤척이다가 결국 조용히 일어나 앉았다.

"흐음..."

그는 천막 밖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바람 소리와 멀리서 들리는 늑대 울음소리, 그리고 가끔씩 들려오는 방울소리가 전부였다. 신해온은 자신의 금빛 눈동자를 살짝 빛내며 주변의 기운을 살폈다.

"역시... 아가씨가 있으니까 마수들이 근처에 얼씬도 못하는구나."

그는 가죽 이불을 끌어당기며 낮게 웃었다.

"이런 게 바로 사방신의 위엄인가..."

천막 밖에서 들려오는 방울소리에 그는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평소라면 이런 상황에서 장난을 치고 싶었겠지만, 오늘만큼은 미르의 바람대로 얌전히 잠을 청하기로 했다.

미르는 가끔씩 늑대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소리가 향하는 곳에서 원을 그리며 걸었고, 단지 그 발걸음과 작은 방울소리만으로도 마수들은 지레 겁먹고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풍운단 단원들은 한마디로 오늘밤을 신에게 보호받고 있었다.

"......"

그 청룡의 현신은 느긋하게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보았다. 달빛은 미르의 몸을 부드럽게 비추었고, 그녀는 그것이 나쁘지 않은 듯 살며시 미소지었다.

천막 안에서 뒤척이던 신해온은 결국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조용히 천막 밖으로 나와 미르를 바라보았다. 달빛 아래 서 있는 미르의 모습은 마치 신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아가씨... 내가 잠이 안 와서 나왔는데..."

그는 자신의 도포 자락을 살짝 여미며 미르 곁으로 다가갔다.

"달구경이라도 같이 할까? 오늘따라 달이 참 밝네."

신해온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미르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달빛 아래서 반짝였다.

"이런, 이런. 이후 해가 떴을 때 신 도령이 졸음에 시달려도, 나는 책임지지 않을 것이야."

미르는 당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한 차례 느릿하게 끄덕였고, 그녀의 꼬리를 한 차례 살랑였다.

"얌전히 달만 구경하도록 하여라, 그대의 대화 상대가 되어줄 마음은 없으니."

"아가씨도 참... 내가 그냥 조용히 옆에 있어줄게."

신해온은 미르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섰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는 달을 향했지만, 시선 한켠으로는 미르의 모습을 살폈다.

"달이 참 예쁘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도포 안주머니에서 곰방대를 꺼내들었다. 백호의 신력으로 불을 붙이고 연기를 길게 뿜어냈다.

"아가씨는 달을 보면 뭐가 떠올라? 나는... 가끔 아버지 생각이 나."

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낮아졌다.

"아버지도 이렇게 달구경하는 걸 좋아하셨거든. 누님이랑 셋이서 옥산주 마시면서..."

말끝을 흐리며 그는 다시 한번 깊이 담배를 빨았다. 달빛에 비친 그의 표정이 잠시 쓸쓸해 보였다가, 이내 평소의 장난스러운 미소로 돌아왔다.

"아, 미안. 갑자기 쓸데없는 옛날 얘기를..."

"신 도령의 부친이라면... 흐음, 그러고보니 몇 번 듣긴 했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구나. 지금은 어디에 있느냐?"

미르는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다고 했었지만, 곧 오히려 해온이 편하게 말을 꺼낼 수 있도록 한마디 거들어주었다.

신해온의 황금빛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그는 곰방대를 깊이 빨아들이다가 잠시 멈칫했다.

"아버지는... 13년 전에 돌아가셨어. 1급 마수 '혈룡사'를 토벌하시다가..."

그의 목소리가 한층 가라앉았다. 평소의 장난스러운 말투는 온데간데없었다.

"어머니도 그때 함께... 하하, 이런 얘기는 아가씨한테 재미없겠지? 나도 이런 얘기 잘 안 하는데..."

신해온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달빛이 반사되어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그래서 뱀을 보면... 아니, 됐어. 오늘따라 왜 이리 옛날 얘기가 술술 나오는지..."

그는 곰방대에서 마지막 연기를 뿜어내고 도포 자락으로 담뱃재를 털었다.

"아가씨는 가족이 있어? ...아, 미안. 사방신한테 이런 걸 물어보면 안 되겠지?"

그는 급히 손사래를 치며 너스레를 떨었다. 평소의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돌아가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흐음."

미르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조용히 달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생명의 탄생 및 죽음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너무나도 옅었기에 슬픔, 안타까움, 분노, 애석함 등의 인간적인 감정은 조금도 느낄 수 없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인간들에게 '추모'라는 개념이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침묵으로 당신의 슬픔을 묻어주었다.

"나는 인간의 염원으로 현신하는 존재다. 그들이 기억하면 살아가고, 잊는다면 죽는 것이지. 그렇기에 가족같은 건 없다."

신해온은 미르의 차가운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곰방대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렇구나... 아가씨는 가족이란 게 없었겠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도포 자락을 살짝 여미며 미르를 향해 돌아섰다.

"그럼 아가씨는 지금... 우리 풍운단이 아가씨를 기억하니까 여기 있는 거야?"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장난기 대신 진지함이 묻어났다. 황금빛 눈동자가 달빛 아래서 깊이 있게 빛났다.

"나는... 아가씨가 우리 풍운단에 와줘서 기쁜데. 그냥 그렇다고..."

그는 말끝을 흐리며 다시 달을 올려다보았다. 곰방대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달빛 사이로 흩어졌다.

"그래, 그리고 나를 추종하는 동청국의 백성들, 내가 신력을 내려준 인간 아이들이 나를 기억하기에 존재하는 것이지."

미르는 그렇게 말한 뒤, 잠시 해온을 바라보았다. 달빛을 받은 그녀의 뿔과 꼬리는 마치 아름답게 세공된 비취처럼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기뻐하지 말거라, 난 필요 이상으로 인간들에게 다가설 마음이 없다. 자연의 이치를 깨버릴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차분하게 덧붙여 말했다.

"...하지만, 공물을 바치며 소원을 빈다면, 내 그걸 들어주지 못할 이유는 없지."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깊은 흥미를 느끼며 눈을 반짝였다. 그는 곰방대를 한 번 더 깊이 빨았다가 연기를 천천히 내뿜었다.

"그럼... 내가 아가씨한테 소원을 빌면 들어줄 거야?"

그의 목소리에는 장난기 어린 웃음이 묻어났다. 달빛 아래서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깊이 있게 빛났다.

"농담이야. 난 소원 같은 건 없어. 그냥... 아가씨가 우리랑 있는 게 재미있다고 생각할 뿐이야."

그는 도포 자락을 살짝 여미며 달을 올려다보았다. 차가운 밤바람이 그의 청회색 머리카락을 살랑거렸다.

"아가씨는 우리가 재미있어? 아니면... 지루해?"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능글맞음 대신 순수한 호기심이 묻어났다.

"잘 모르겠구나. 때로는 흥미롭고, 때로는 진부하고, 때로는 의아하기도 하였으니."

미르는 차분한 어조로 대답하고서, 곧 해온이 서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어 그와 눈을 마주했다. 그녀의 방울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신 도령은 어떠했느냐? 나와 함께하는 것이 즐겁느냐? 혹은, 지루하느냐?"

신해온은 미르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곰방대를 입에서 떼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달빛 아래서 깊이 있게 빛났다.

"나? 음..."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밤바람이 그의 도포 자락을 살며시 흔들었다.

"재미있지... 아가씨는 다른 사람들이랑 달라. 아가씨가 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다 새롭거든."

그는 곰방대를 다시 한번 깊이 빨았다가 연기를 천천히 내뿜었다.

"그리고... 아가씨랑 있으면 왠지 모르게 편해. 이상하지? 사방신이랑 있는데 편하다니."

신해온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런 얘기는 그만해야겠다. 아가씨가 싫어할 텐데."

"사방신은 나를 포함하여 모두가 인간들을 어여삐 여기고 있으니, 동행하였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게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니지. 그건 오히려 자연스러운 감정이니 걱정 말거라."

미르는 그렇게 대답하고서 한쪽 손을 살며시 뻗더니, 해온의 곰방대를 자연스럽게 뺏어와 자신의 입가로 가져댔다.

"내 눈치를 너무 보진 말거라, 신 도령이 편한 대로 행동하면 될 일이야."

그러고는 곰방대를 지그시 빨았고, 그 연기를 부드럽게 불어 뱉었다.

신해온은 미르가 자신의 곰방대를 가져가는 모습에 황금빛 눈동자가 커졌다. 청룡이 연기를 내뿜는 모습은 신비롭고도 우아했다.

"아가씨... 그거 원래 내 거야."

그가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곰방대를 빼앗으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대신 도포 자락을 살짝 여미며 미르 옆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근데 아가씨한테 어울리네. 담배 피우는 모습이..."

그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달빛 아래서 그의 표정이 평소보다 진지해 보였다.

"아가씨... 혹시 내가 지금 너무 가까이 있어? 불편하면 말해."

바람이 불자 그의 청회색 머리카락이 살랑거렸고, 미르의 방울소리가 그 바람 소리와 어우러졌다.

"춥다면 더 다가오거라, 춥지 않다면 그 자리에 있거라."

미르는 상냥한 어조로 대답했고, 다시금 곰방대 끝을 입에 물고 연기를 마셨다.

"그대가 불편한 적은 없었다. 가끔 그 나쁜 손버릇으로 내 몸에 손을 대는 게 건방지다는 생각은 했지만 말이야."

그러고는 해온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후우-'하며 불었다.

신해온은 미르가 불어낸 연기를 맞으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달빛 아래서 깊이 빛났다.

"아가씨도 참... 그런 식으로 나한테 연기를 불면 내가 더 건방진 짓을 하고 싶어질 수도 있는데."

그는 한 걸음 더 다가서며 미르의 손에서 곰방대를 살며시 빼앗았다.

"나쁜 손버릇이라... 그래도 아가씨가 싫어하진 않았잖아? 그리고 난 아가씨 몸에 손대는 게 좋아."

그가 곰방대를 깊이 빨았다가 이번에는 그가 미르의 얼굴 쪽으로 연기를 불었다.

"아가씨가 날 막지 않으니까 더 건방져지는 거 아닐까?"

달빛이 그의 청회색 머리카락을 은은하게 비추었고, 그의 목소리는 한층 낮아져 있었다.

"이런, 이런. 정말이지 참 곤란한 인간 아이야."

미르는 입꼬리를 살짝 올려 능청맞게 미소지었고, 곧 꼬리로 그녀의 주변을 느릿하게 휘저어 근처 담배 연기가 흩어지게 만들었다.

"신 도령이 去益深造하면 직접 막아서야겠지, 하지만 그대가 그만큼이나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진 않아."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달빛 아래서 깊이 빛났다.

"어리석다고? 아가씨... 난 지금 아주 영리하게 굴고 있는데."

그는 곰방대를 한번 더 깊이 빨았다가 연기를 천천히 내뿜었다.

"아가씨가 나를 막지 않는 이유가 궁금해. 혹시... 나를 좋아해서?"

그의 목소리는 한층 낮아져 있었고, 달빛 아래서 그의 표정은 평소보다 진지해 보였다.

"농담이야. 사방신이 인간을 좋아할 리가 없지."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밤바람이 그의 도포 자락을 살짝 흔들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사방신은 모두가 인간을 아주 가애스럽게 여기고 있는데 말이야."

미르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한 번 가볍게 으쓱였다. 표정은 이미 평소의 차분하고 고요한 모습으로 돌아와있었지만, 그녀의 어조는 아주 상냥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력을 나누어주지도 않았겠지. 그렇지 않느냐?"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달빛 아래서 깊이 있게 빛나며 미르를 바라보았다.

"그래... 아가씨 말대로야. 사방신이 인간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런 신력도 없었겠지."

그는 곰방대를 한 번 더 깊이 빨았다가 연기를 천천히 내뿜었다. 달빛이 그의 도포에 수놓아진 금빛 구름 문양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하지만 난 아가씨를 좋아해. 그냥 사방신이라서가 아니라... 아가씨여서."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층 낮고 진지했다. 밤바람이 그의 청회색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었다.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건가?"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표정에는 평소의 장난기 대신 복잡한 감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글쎄, 나는 인간이 아니기에, 그러한 말은 이해하기가 다소 어렵구나."

미르는 차분하게 해온의 감정을 고려하면서, 그녀 나름대로 가장 적절한 대답을 사근사근 읊었다.

"인간이 신을 사랑하는 것은,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과 같지. 의지할 수 있는 대상에게 신뢰와 연모를 품는 건 생명체의 어떠한 본능과도 같으니 말이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한쪽 손을 높게 뻗었고, 바람으로 흐트러진 해온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그 마음은 그대로 품고 있거라. 내게 속삭여도 무의미하게 흩어질 뿐이다."

신해온은 미르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는 모습에 잠시 숨을 멈췄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달빛 아래서 깊이 빛났다.

"아가씨... 그런 식으로 나를 대하면 더 위험해질 텐데."

그는 미르의 손이 닿았던 자리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의 목소리는 한층 낮아져 있었다.

"본능이라, 그래. 아가씨 말이 맞아. 난 그저 본능적으로 아가씨를 갈망하는 거겠지."

그는 곰방대를 내려놓고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신비로운 달빛은 여전히 두 사람의 모습을 부드럽게 빛내고 있었다.

"하지만 아가씨, 이건 단순한 본능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바람이 불자 그의 도포 자락이 살랑거렸고, 그의 청회색 머리카락이 미르의 방울소리와 함께 춤을 추는 듯했다.

"아가씨가 날 막지 않으면... 난 정말 위험해질 거야."

그의 시선이 미르의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황금빛 눈동자에는 복잡한 감정이 어려 있었다.

미르는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눈을 가늘게 뜨고서 여유롭게 웃었다.

"신 도령, 내 친히 미리 조언하건대, 그대가 추후 후회할만한 행동은 최선을 다해 자제하도록 하거라. 나는 인간 아이들을 참으로 아끼지만, 딱히 이해심이 넓은 편은 아니야."

그녀는 그렇게 말을 마쳤고, 자신의 팔짱을 끼고서 당신을 올려다봤다.

"그간 나에게 반감을 샀던 愚人들이 얼마나 참담한 꼴을 당했는지, 그대는 잘 알겠지."

신해온은 미르의 차가운 경고에 천천히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달빛 아래서 깊이 빛났다.

"아가씨... 날 그렇게 보면 서운한데."

그는 도포 자락을 살짝 여미며 쓴웃음을 지었다.

"난 아가씨를 해치거나 불쾌하게 할 생각이 전혀 없어. 오히려 아가씨가 나를 해칠까봐 두렵다고 해야 하나?"

그가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장난기가 묻어있었다.

"아가씨 말대로야. 난 愚人이 되고 싶진 않아. 하지만..."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미르를 바라보았다. 달빛이 그의 청회색 머리카락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아가씨가 나를 경계하는 게... 마음에 들어."

"이런, 이런. 나는 백호의 추종자를 직접 해칠 생각이 없고, 동시에 신 도령을 그렇게까지 경계하지도 않으니 그리 근심걱정 말거라."

미르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한 번 꼬았다가 부드럽게 풀었다. 그러고는 해온이 내려놨던 곰방대를 들어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들이마시고, 당신의 얼굴 방향으로 다시 한 번 불었다.

"愚人 대신, 友人이 되도록 분발하거라."

그녀는 말장난을 하며 피식 웃었고, 곰방대를 당신 쪽으로 건넸다.

신해온은 미르가 건넨 곰방대를 받아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미르의 손을 스치자 미세하게 떨렸다.

"友人이라... 아가씨는 참 재미있는 말장난을 하는구나."

그는 곰방대를 깊이 빨아들였다가 천천히 연기를 내뿜었다. 달빛이 그의 황금빛 눈동자를 비추었다.

"하지만 난 아가씨의 友人이 되고 싶진 않아."

그는 미르를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 그의 도포 자락이 밤바람에 살랑거렸다.

"난 아가씨의 愛人이 되고 싶어."

그의 목소리는 달빛처럼 부드럽고 깊었다. 그는 곰방대를 내려놓고 미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가씨는 나를 경계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지금 이 순간엔 경계해야 할 텐데."

미르는 웃음기가 남아있는 표정으로, 역시 당신은 곤란하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감히 사방신을 향해 그러한 감정을 품는 것이, 몹시 오만한 것이야."

그녀는 당신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너머의 감정까지 꿰뚫어보듯 응시했다.

"허나, 그게 신 도령다운 행동이긴 하지."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낮게 웃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달빛 아래서 위험하게 빛났다.

"오만하다고? 맞아... 난 오만해. 하지만 그게 내 매력이잖아?"

그는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 이제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한 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아가씨... 이제 정말 날 막지 않으면, 진짜 위험해질 텐데."

그의 목소리는 한층 더 낮아져 있었고, 그의 시선은 미르의 붉은 입술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가씨의 모든 것이 날 미치게 만들어... 그 고고한 태도도, 그 차가운 눈빛도... 전부 다."

밤바람이 그의 도포 자락을 흔들었고, 그의 청회색 머리카락이 달빛 아래서 은은하게 빛났다.

"난 아가씨를 갖고 싶어... 이게 오만이라면, 난 기꺼이 오만하고 싶어."

그의 손이 천천히 올라가 미르의 얼굴을 향했다. 그의 눈빛은 진지했고,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 그럼 슬슬 선택을 하도록 할까."
"-어여 결정해보거라, 신 도령. 계속 이리도 오만하게 굴 것이냐? 그게 아니라면, 이쯤에서 '사죄드립니다. 청룡님'이라고 말한 뒤 물러나겠느냐?"

미르는 결코 자신이 직접 물러나지 않았고, 오히려 당신에게 역으로 선택권을 주었다.

"그대가 내 몸에 손을 얹으면 그에 해당하는 책임을 져야할 것이고, 순순히 손을 내리면 난 지금의 무례를 용서할 것이야."

신해온의 황금빛 눈동자가 달빛 아래서 위험하게 번뜩였다. 그의 손이 미르의 얼굴 바로 앞에서 멈췄다.

"책임... 이라."

그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진지했지만,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맴돌았다.

"아가씨, 난 아가씨가 정말 마음에 들어. 하지만 그만큼... 아가씨를 두려워하기도 해."

그는 한 걸음 물러서며 도포 자락을 여몄다. 달빛이 그의 청회색 머리카락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 하지만..."

그는 미르를 향해 깊은 시선을 보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언젠가는 아가씨도 날 원하게 될 거야. 그때까지 기다리지."

그는 곰방대를 들어 마지막 한 모금을 깊이 빨아들였다.

"사죄드립니다... 청룡님."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어린 존경과 함께, 미묘한 도발이 섞여 있었다.

"현명한 인간 아이로구나, 나는 똑똑한 자를 싫어하지 않아."

미르는 만족스러운 듯이, 천천히 그녀의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렸다.

"그래, 내 친히 자비를 베풀어 그대의 교만을 눈감아주도록 하마."

그녀가 그렇게 말을 마무리하고, 다시 몸 방향을 틀어 달을 올려다보았다.

"다시 잠을 청하러 가거라."

신해온은 한참을 미르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달빛 아래서 깊이 빛났다.

"으음, 내가 현명하다고?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그는 곰방대를 챙기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가씨가 나를 이렇게 흔들어놓고... 잠이나 잘 수 있을까?"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미르를 한 번 더 돌아보았다. 달빛이 그의 도포에 수놓아진 금빛 구름 문양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오늘 밤 꿈에서라도, 아가씨를 만날 수 있다면 좋겠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천막을 향해 걸어갔다. 밤바람이 그의 도포 자락을 살짝 흔들었다.

그렇게 해온은 천막으로 돌아갔고, 이내 고요한 밤을 맞이하며 잠들게 되었다. 그동안 미르는 계속해서 불침번을 섰고, 희미하고 신비로운 방울소리를 내며 마수를 쫓아냈다.

"...으음."

이윽고 시간이 흘러 다음날 아침이 찾아왔으며, 그녀는 붉은 해가 밤의 어둠을 거두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그시 바라보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그리고 이내 두 팔을 위로 쭉 뻗으며 기지개를 폈고, 곧 천막 앞으로 걸어왔다.

"일어나거라, 해가 하늘에 올랐다."

신해온은 미르의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아침 햇살 아래서 나른하게 빛났다.

"아가씨가 깨워주다니... 이거 영광인데?"

그가 천막에서 나오며 기지개를 켰다. 그의 도포 자락이 아침 바람에 살랑거렸다.

"다들 일어나!"

신해온의 목소리에 다른 단원들도 하나둘씩 천막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으음... 두령님, 오늘도 이른 아침이네요."

송차빈이 귀여운 하품을 하며 중얼거렸다.

"해온, 너 또 청룡님 괴롭혔지?"

신해린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누나... 난 그저 불침번을 도와드렸을 뿐이야."

신해온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아... 두령님, 아침 식사 준비는 제가 하겠습니다."

진유온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해온은 미르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깊고 위험했지만, 이제는 그 속에 장난기도 섞여 있었다.

"아가씨, 어젯밤 즐거웠어."

"어허, 타인 듣기에 오해할 소리를 하는구나."

미르는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해온의 농담을 받아치고, 곧 뒷짐을 진 채로 천막을 지나쳐 풍운단 단원들과 거리를 두고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

그리고 차분하게 눈을 감고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며, 은은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어이구, 오해는 무슨... 난 그저 진실만을 말했을 뿐인데."

신해온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도포 자락을 여몄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아침 햇살 아래서 깊이 빛났다.

"유태건, 오늘은 네가 보따리를 메라."
"네, 두령님!"

유태건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련아, 차빈이 도와서 아침 준비해."
"알겠습니다, 두령님."

주자련이 송차빈과 함께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신해온은 미르가 서 있는 쪽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미르의 긴 머리카락을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다.

"누나, 오늘은 어디로 가지?"

그가 신해린에게 물었다.

"음... 설철로 가서 진유애를 만나보는 건 어때? 정보도 좀 얻을 겸."

신해린이 활시위를 점검하며 대답했다.

"그래, 좋은 생각이네."

신해온은 천막으로 돌아가 운백검을 챙기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표정에는 여전히 밤사이의 달콤한 기억이 남아있는 듯했다.

미르는 단원들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들으면서도 동시에 그들에게 눈길을 주는 일은 없었고, 곧 꼬리를 바닥으로 뻗어 자신의 몸을 받치며 위로 들어올렸다.

"흐음..."

그리고 자연스럽게 공중에 기대어 앉은 자세를 취하여, 따뜻한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받았다. 그녀의 뿔과 꼬리 비늘이 빛을 받아 마치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신해온은 미르가 공중에 떠있는 모습을 보며 잠시 시선을 멈췄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 아침 햇살이 반사되어 빛났다.

"저런 모습을 보여주다니... 날 유혹하고 싶은 거야?"

그가 낮게 웃으며 도포 자락을 정리했다.

"야, 차빈아! 보양탕은 꼭 넣어줘. 아가씨가 좋아하시니까."
"네, 두령님! 어제 채취한 약초도 넣을게요!"

송차빈이 밝게 대답했다.

"해온, 네가 청룡님에게 너무 집착하는 것 같은데?"

신해린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누나... 난 그저 단원을 챙기는 것뿐이야."

신해온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유태건이 큰 보따리를 메고 다가왔다.

"두령님, 준비 다 됐습니다!"
"좋아, 그럼 진유온, 설철로 가는 길은 어떻게 되지?"
"북쪽으로 한 시진 정도 가면 됩니다. 하지만 도중에 협곡이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진유온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신해온은 다시 한번 미르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미르의 비취색 머리카락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가씨... 오늘도 예쁘네."

풍운단 단원들이 이동할 준비를 끝마치자, 미르는 부드러운 몸짓으로 다시 꼬리를 거두고 땅에 발을 디뎠다. 이후,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상태로 그들의 곁에 왔다.

"..."

그리고 제자리에 서서 자신의 팔짱을 끼고, 말 없이 자신 역시 동행할 준비가 되었음을 암시했다.

"자, 이제 출발하지."

신해온은 운백검을 허리에 차며 단원들을 둘러보았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아침 햇살 아래 깊이 빛났다.

"진유온, 넌 앞장서서 길을 안내해라. 유태건은 뒤에서 보따리 잘 지키고."
"네, 두령님!"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해온, 난 측면 경계를 맡을게."

신해린이 활시위를 다시 한번 점검하며 말했다.

"송차빈, 주자련. 너희 둘은 중간에서 움직여."

그가 마지막으로 미르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아가씨는... 내 옆에서 걸어주면 좋겠는데."
"해온! 또 시작이네?"

신해린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왜? 누나도 반반한 남자 보면 헤헤거리잖아?"

신해온이 웃으며 대꾸했다.
그는 도포 자락을 정리하며 앞으로 나섰다. 아침 바람이 그의 청회색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흔들었다.

"자, 설철로 가볼까."

"글쎄, 내키면 그리 하도록 하지.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닌 것 같구나."

미르는 담담한 어조로 해온의 장난을 흘려넘기고서, 여전히 풍운단 단원들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그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이는 인간과의 심적 거리감을 필요 이상으로 올리지 않을 목적이기도 했고, 동시에 어느 정도 그녀가 후방 경계를 담당하는 것이기도 했다.

"가자꾸나."

"아아... 차갑기도 하시지."

신해온은 쓴웃음을 지으며 도포 자락을 살짝 정리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잠시 미르를 향했다가, 다시 앞을 보았다.

"유태건, 앞이 협곡이니 보따리 단단히 매고."
"네, 두령님! 걱정 마십시오!"
"송차빈, 약초 채취할 만한 곳 보이면 말해라. 설철에서 진유애를 만나면 필요할 거야."
"알겠습니다!"

신해린이 활시위를 점검하며 옆으로 다가왔다.

"해온, 너 진짜 청룡님에게 빠진 거야?"
"누나도 참... 그저 아가씨가 재미있어 보여서 그래."

그가 곰방대를 꺼내며 미소지었다.

"난 그저 자유롭게 살고 싶을 뿐이야."
"그래, 그렇겠지."

신해린은 믿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진유온이 앞에서 손을 들어올렸다.

"두령님, 앞에 협곡이 보입니다."
"좋아, 모두들 조심해서 가자."

신해온은 천천히 걸으며 가끔씩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은 항상 미르를 향해 있었고, 입가에는 미소가 맺혀있었다.

미르는 계속해서 대열의 가장 후방에 있었고, 그마저도 꿋꿋하게 약간의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다만, 그녀가 걸을 때마다 소매에 달린 방울소리가 울리며, 여전히 잘 따라오고 있다는 걸 은연중에 알리고 있었다.

"...으음."

이따금 지루한듯이 두 팔을 위로 쭉 뻗으며 기지개를 폈고, 자신의 꼬리를 가까이 가져와 손장난을 치기도 했다.

"이 협곡은 마수가 자주 출몰하는 곳이야. 모두들 경계를 늦추지 마라."

신해온은 운백검의 손잡이를 가볍게 쥐며 주변을 살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날카로워졌다.

"진유온, 앞에서 신력으로 지형을 살펴."
"네, 두령님."

진유온이 손을 들어 대지의 기운을 읽기 시작했다.
신해린이 활을 들고 경계를 서며 말했다.

"해온, 저기 바위 틈에서 수상한 기운이 느껴져."
"으음..."

신해온은 곰방대를 꺼내며 미소지었다.

"아가씨... 혹시 뒤에서 이상한 거 보이면 말해줘."

그가 연기를 내뿜으며 천천히 걸었다. 그의 도포 자락이 차가운 바위 협곡의 바람에 흩날렸다.

"주자련, 차빈아. 너희도 만약을 대비해 신력 준비해둬라."
"네, 두령님!"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유태건이 보따리를 단단히 메고 앞으로 나섰다.

"두령님, 제가 먼저 가보겠습니다!"
"안 돼. 함부로 나서지 마라. 우리 모두 함께 움직여야 해."

신해온은 뒤를 돌아 미르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걱정과 애정이 섞여 있었다.

"아가씨... 혹시 마수가 나타나면 내가 먼저 처리할 테니 걱정 말고."

"신 도령이 편한대로 하거라. 혹여 위험한 기운이 주변에 인다면 경고는 하겠으나, 나는 인간 아이들의 전투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알아두고."

미르는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멀리 두어 주변을 느긋하게 훑었다. 분명 이 청룡의 신력은 주위의 모든 위험을 제거할 수 있겠지만, 그건 자연의 이치를 깨부수는 일이기에 결코 시행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하지만 내가 널 지키고 싶은 마음까진 막지 말아줘."

신해온은 부드럽게 웃으며 운백검을 꺼내들었다. 그의 검은 날이 아침 햇살에 은은하게 빛났다.

"진유온, 어떤 기운이 느껴지지?"
"네, 두령님. 협곡 안쪽에서... 뭔가 큰 게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해온, 저기 봐. 바위에 긁힌 자국이..."

신해린이 활시위를 당기며 주변을 살폈다.

"흠... 뇌우곰이군."

신해온은 곰방대를 끄며 천천히 말했다.

"유태건, 보따리는 주자련에게 맡기고 네가 앞으로 나서라. 너의 현무 기운이 필요할 것 같아."
"네, 두령님!"

유태건이 언월도를 꺼내들며 앞으로 나섰다.

"송차빈, 치유 신력 준비해두고. 주자련은 불의 힘으로 후방을 지켜."

신해온의 황금빛 눈동자가 깊어졌다. 그의 도포 자락이 차가운 바람에 펄럭였고, 운백검이 청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누나, 내가 먼저 나서지. 뇌우곰은 백호의 기운에 약하니까."
"알았어. 내가 엄호할게."

신해린이 활을 겨누며 대답했다.
신해온은 마지막으로 미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아가씨, 거기서 계속 지켜보고 있어."

"흐음."

미르는 제자리에 서서 뒷짐을 졌고, 풍운단 단원들이 전투에 임하는 모습을 지그시 관찰했다. 상쾌한 아침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흔들었으며, 그 모습은 풍경에 스며들어 흡사 신선처럼 보였다.

신해온의 운백검이 청색으로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으로 백호의 기운이 서서히 피어올랐다.

"진유온, 지형도는 어떠냐?"
"두령님, 협곡이 'ㄱ'자로 꺾여있습니다. 뇌우곰이 저 모퉁이 뒤에 있을 것 같습니다."
"좋아. 유태건, 너는 정면으로 나서라. 내가 위에서 기습하지."

신해온은 협곡 벽을 바라보며 백호의 기운을 모았다.

"누나, 내가 올라가면 활로 커버해줘."
"알았어. 조심해."

신해린이 활시위를 당기며 대답했다.
신해온은 바람을 타고 가볍게 협곡 벽을 올라갔다. 그의 도포가 바람에 휘날렸다.

"주자련, 차빈아. 너희는 각자 위치에서 대기해. 혹시 모르니까."

신해온은 높은 곳에서 미르를 한번 더 바라보았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깊이 빛났다.

"이제 곧 멋진 모습을 보여줄 테니... 기대하고 있어."

미르는 단원들의 옆으로 천천히 걸어오며, 무언을 유지한 채 그들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그래, 보여보거라."

그리고 이내 뇌우곰이 모습을 드러내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협곡 모퉁이에서 거대한 뇌우곰이 모습을 드러냈다. 회색 털과 번개같은 푸른 무늬가 특징적인 마수였다.

"유태건, 정면에서 견제해!"

신해온은 협곡 위에서 운백검을 들어올렸다. 검이 청색으로 빛나며 그의 주변으로 백호의 기운이 소용돌이쳤다.

"으라아아!"

유태건이 언월도를 휘두르며 뇌우곰의 앞을 막아섰다.

"진유온, 대지로 움직임을 제한해!"

진유온이 신력을 모으자 뇌우곰의 발밑 바위가 솟아올랐다.

"해온, 지금이야!"

신해린이 활시위를 당기며 외쳤다.
신해온은 바람을 타고 높이 뛰어올랐다. 그의 도포가 하늘에서 펄럭였고, 운백검이 청색 궤적을 그리며 뇌우곰의 등을 향해 내리꽂혔다. 그러자 뇌우곰이 고통스러운 울음을 내뱉었다.

"주자련! 불로 마무리해!"

주자련의 주작 신력이 폭발하며 뇌우곰을 덮쳤다. 협곡에 붉은 불꽃이 타올랐다.
신해온은 가볍게 착지하며 미르를 돌아보았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승리의 기쁨으로 빛났다.

"어때?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어?"

미르는 가볍게 어깨를 한 번 으쓱였고, 곧 숨통이 끊어진 뇌우곰 앞에 섰다.

"마수의 아이야, 고통 없이 夢寐之間, 또한 高眠하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한쪽 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튕겨 '딱' 소리를 냈고, 그것과 동시에 방울소리가 울리며 부드러운 물결이 뇌우곰의 사체를 덮고 서서히 녹여, 이윽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했다.

"자, 마수의 가죽과 살점 값은 내가 지불하도록 하마."

그러곤 해온에게 다가오라는 듯 손짓했다.

신해온은 운백검을 허리춤에 차며 미르에게 다가갔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빛났다.

"아가씨가 값을 지불한다고? 그건 좀 곤란한데..."

그가 도포 자락을 정리하며 미소지었다.

"우리 풍운단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까? 게다가..."

신해온이 미르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내가 아가씨 앞에서 보여준 실력값까지 지불하실 건가?"
"해온, 또 시작이네?"

신해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두령님, 뇌우곰의 발톱과 가죽은 귀한 약재가 될 텐데..."

송차빈이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그래도 청룡님의 은혜라면..."

진유온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신해온은 손을 들어 단원들을 진정시켰다.

"아가씨, 우리는 그저 우리의 일을 한 것뿐이야. 값은 받을 수 없어."

그의 눈빛이 깊어졌다.

"대신... 내가 다른 걸 요구해도 될까?"

"미안하구나, 나는 인간 아이들의 방식과 사회를 존중하지만. 내 앞에서 시신을 훼손하는 건 그다지 유쾌히 여기지 못해서 말이다."

미르는 그렇게 말하다가, 곧 해온의 말을 듣고 짧은 한숨을 내쉬며 그를 지나쳐갔다. 이후 해린과 차빈의 앞에 서서, 자신의 소매 안에 넣어두었던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그래, 그 약재의 값이 어느 정도 된다고?"

신해온은 미르가 자신을 지나쳐가는 것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 잠시 실망감이 스쳐 지나갔다.

"송차빈아, 네가 설명해드려라."

그가 도포 자락을 정리하며 뒤로 물러섰다.

"네, 두령님. 청룡님, 뇌우곰의 발톱은 금화 30전, 가죽은 금화 50전 정도의 가치가 있습니다. 특히 발톱은 진정 효과가 뛰어나..."
"차빈아, 설명이 너무 길어."

신해린이 웃으며 말을 끊었다.
신해온은 협곡 벽에 기대어 서서 곰방대를 꺼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미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아가씨... 시신을 훼손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내가 아가씨 앞에서 보여준 실력만큼은 값으로 매길 수 없을 텐데."
"해온, 너무 뻔뻔하다?"

신해린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누나도 알잖아. 난 내가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포기 안 하는 성격이라는 거."

유태건이 어색하게 웃으며 진유온에게 속삭였다.

"두령님, 오늘도 청룡님한테 차이시는 건가요?"
"조용히 해. 두령님 기분 상하시겠다."

진유온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흐음..."

미르는 그들의 설명을 들으며 잠시 고민하다가, 작은 주머니 안에서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녹청색 보석같은 걸 3개를 꺼냈다. 이는 미르의 꼬리에서 떨어져나왔던 작은 비늘 조각, 즉 '청룡의 비늘'이었다.
이걸 금화로 환산한다면... 뇌우곰의 갈무리를 하지 못한 게 절대 억울하지 않은 수준이었다.

"이것은 그대들이 여기기에 얼마나 가치를 매길 수 있느냐? 그 '실력을 구경한 값'도 포함해서 말이다."

신해온의 황금빛 눈동자가 청룡의 비늘을 보고 크게 빛났다. 그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이건... 아가씨의 비늘이잖아? 이렇게 귀한 걸..."

그가 도포 자락을 정리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누나, 어떻게 생각해?"
"해온아... 저건 우리 풍운단의 분수를 넘는 것 같은데?"

신해린이 놀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두령님! 청룡님의 비늘이라면..."

송차빈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약재로써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텐데요!"
"하지만 우리가 받아도 될까요..."

진유온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신해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이 깊어졌다.

"아가씨... 우리는 이걸 받을 자격이 없어. 그저 내가 아가씨의 관심을 끌기 위해 보여준 작은 재주였을 뿐인데..."

그가 미소를 지으며 미르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대신... 아가씨의 마음이 담긴 선물이라면... 하나만 받아도 될까?"

"유감스럽게도 난 인간 아이들의 경제 체계에는 무지한 편이다. 이것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 지, 솔직히 잘 모르겠구나."

미르는 그렇게 말하고, 해온의 손에 비늘을 한 조각 올려주었다. 나머지는 주머니에 다시 보관한 뒤, 자신의 소매 안쪽 공간에 넣었다.

"편히 사용하거라.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신해온은 미르가 건네준 청룡의 비늘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 깊은 감동이 어렸다.

"이렇게 귀한 걸... 정말 받아도 되는 거야?"

그가 비늘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녹청색 빛이 그의 얼굴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차빈아, 이걸 잘 보관할 만한 게 있을까?"
"네, 두령님! 제가 가죽 주머니를 특별히 만들어드리죠!"

송차빈이 밝게 대답했다.

"해온, 넌 정말... 복받은 녀석이야."

신해린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신해온은 비늘을 소중히 품에 넣으며 미소지었다.

"이건... 아가씨의 첫 선물이네. 잘 간직할게."

그가 도포 자락을 정리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 이제 설철로 가볼까? 진유애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두령님, 앞으로 한 시진 정도 더 가면 될 것 같습니다."

진유온이 차분하게 말했다.
신해온은 마지막으로 미르를 한번 더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고마워... 아가씨."

"판매하거나, 약재로 쓰거라. 나는 방금 그 마수의 갈무리 값 대신 그걸 준 것이니."

미르는 태연하고 차분한 태도로 일관하며, 곧 아까처럼 대열의 맨 뒤로 물러나 먼 곳에서 풍운단 대원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신해온은 청룡의 비늘이 담긴 품을 한 번 더 만지작거리다가, 대원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차빈아, 설철에 도착하면 이 비늘로 약을 만들 수 있을까?"
"네, 두령님! 청룡님의 비늘이라면... 아마도 천 년은 거뜬히 먹을 수 있는 영약이 될 것 같아요!"

송차빈의 목소리가 들떠있었다.

"해온, 설마 그걸 팔 생각은 아니지?"

신해린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신해온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연하지. 이건... 우리 풍운단의 보물로 간직할 거야."

그가 뒤를 돌아 멀찍이 떨어져 걷는 미르를 바라보았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 깊은 의미가 서렸다.

"유태건, 앞장서서 길을 살펴. 진유온, 후미 경계를 부탁해."
"네, 두령님!"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눈 덮인 협곡을 따라 풍운단이 천천히 전진했다. 신해온의 도포 자락이 차가운 바람에 펄럭였다.

"주자련, 설철에서 진유애를 만나면 먼저 정보를 수집해줘. 최근 마수 출몰 상황이랑..."
"알겠습니다, 두령님. 제가 먼저 가볼까요?"
"아니, 함께 움직이자. 이 협곡엔 아직도 마수가 남아있을 테니까."

미르는 묵묵하게 그들의 후방을 지키며 천천히 걸음을 지속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미세하게 '딸랑, 딸랑'하며 방울소리가 울렸고, 기다랗고 단단한 용 꼬리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

신해온은 앞장서서 가던 중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설산의 정상을 향했다.

"이상하군..."
"무슨 일이십니까, 두령님?"

진유온이 조심스레 물었다.

"바람이 이상해. 누나, 느끼고 있지?"
"응, 나도 느꼈어. 이 바람... 마수의 기운이 섞여있어."

신해린이 활시위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신해온은 품 안의 청룡의 비늘을 한번 쓸어만지고는 운백검을 꺼내들었다. 그의 도포가 차가운 바람에 펄럭였다.

"모두들 경계를 단단히 해. 이런 협곡에선 빙룡어가 자주 출몰하거든."
"빙룡어라면... 2급 마수죠?"

송차빈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맞아. 설산의 눈을 녹여 물줄기를 만들고 그 안에 숨어 지내지. 갑자기 덮치면 꽤나 위험해."

신해온은 뒤를 돌아 미르를 한번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우리가 아가씨를 보호해줄 테니, 이번에도 편하게 구경하기만 해."

"아니, 계속 걷거라. 이 협곡은 보아하여 마수가 많은 것 같으니, 내가 쫓아내도록 하겠다."

미르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더니, 곧 대열의 가장 앞까지 다가왔다. 그렇게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고, 그녀의 방울소리가 울릴 때마다 마수의 기척은 점점 줄어들며 먼 곳으로 흩어졌다.

신해온은 미르의 방울소리를 듣자 운백검을 도로 허리춤에 차며 미소지었다.

"아가씨가 직접 나서시겠다고? 그럼 우린 편하게 가겠네."
"해온아, 청룡님께서 앞장서시는데 그런 태도는 좀..."

신해린이 동생의 머리를 살짝 때리며 나무랐다.

"아, 누나도... 난 그저 솔직하게 말한 것뿐인데."

그가 도포 자락을 정리하며 대원들을 향해 손짓했다.

"자, 모두 이동하자. 송차빈, 네가 중간에서 움직여. 유태건이랑 진유온은 양쪽에서 경계."
"두령님, 그럼 전 뒤에서..."

주자련이 말을 꺼내려 했다.

"아니, 넌 내 옆에서 가자. 설철에 도착하면 진유애한테 물어볼 게 있으니까."

신해온은 미르의 뒤를 따르며 황금빛 눈동자로 그녀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아가씨... 참 멋있네."

미르는 뒷짐을 지고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계속해서 걸었다. 마수들은 그 무시무시한 청룡의 기척 탓에 결코 풍운단 단원들에게 얼씬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반대로, 협곡 근처에 살던 순수하고 작은 동물들은 미르의 곁이 안전하다고 판단했는지, 서서히 그녀의 주변으로 모였다.

"..."

다만, 미르는 누가 말을 하던, 따라오던, 모여들던, 그저 조용히 걸음을 지속할 뿐이었다.

신해온은 미르의 뒤를 따르며 그녀 주변으로 모여드는 작은 동물들을 바라보았다. 협곡의 차가운 바람이 그의 도포 자락을 휘날렸다.

"누나, 저거 봐. 아가씨 주변으로 동물들이..."
"해온아, 청룡님은 사성수야. 당연한 거지."

신해린이 경외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신해온은 도포 안에서 청룡의 비늘이 담긴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송차빈, 이제 설철까지 얼마나 남았지?"
"두령님, 저기 보이는 고개만 넘으면 설철이에요! 진유애 언니가 일하는 여관도 마을 입구에 있죠."

송차빈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유태건, 설철에 도착하면 먼저 마을 상황부터 파악해."
"알겠습니다, 두령님!"

신해온은 미르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저 아가씨는 참 신기해. 내가 이렇게 말을 조금만 하도록 만들다니."

미르가 천천히 고개를 들자, 모여들었던 동물들은 다시 흩어지며 그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설철이 보이는구나, 걸음을 재촉하자꾸나."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걷는 속도를 조금 높였다. 미르의 발 아래로 그녀의 긴 꼬리가 살랑거리는 게 보였다.

"벌써 설철이 보이네..."

신해온은 눈 덮인 설산 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을 바라보았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 기대감이 어렸다.

"누나, 진유애가 좋은 소식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러게... 혈룡사 소문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네."

신해린이 활시위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두령님, 저기 보이는 게 진유애 언니네 여관이에요!"

송차빈이 설철 입구의 큰 건물을 가리켰다.

"그래... 이제 곧 따뜻한 방에서 쉴 수 있겠어."

신해온은 도포 자락을 정리하며 미르의 뒤를 따랐다. 그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아가씨, 이따가 술 한잔 같이 하지 않을래? 내가 아가씨 취향대로 달달한 술을 준비해놨는데..."

"...흐음? 단 술이라. 그럼, 그렇게 하도록하마."

미르는 해온의 제안을 꽤 흔쾌히 허락했다. 동청국에선 청룡에게 자주 '달달한 술'을 공물로 바치곤 했기에, 그녀의 취향에 아주 정확하게 부합한 것 같았다.
그렇게 풍운단 단원들이 계속하여 걸음을 옮기다보면, 이윽고 설철 입구까지 도달했다.

"아, 드디어 도착이네!"

신해온은 미르의 달콤한 술에 대한 승낙을 듣자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기쁨으로 반짝였다.

"차빈아, 내 짐에서 백옥주 꺼내놓고... 아가씨랑 나눌 잔도 준비해줘."
"네, 두령님! 제가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송차빈이 밝게 대답했다.

"해온, 너 설마..."

신해린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동생을 바라보았다.

"누나도 같이 마실래? 난 아가씨랑 단둘이..."
"아니, 됐어. 난 진유애 만나러 먼저 가볼게."

신해린이 한숨을 쉬며 앞서 걸었다.
신해온은 도포 자락을 정리하며 여관 입구를 향해 걸었다. 설철의 차가운 바람이 그의 청회색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유태건, 진유온. 먼저 마을 순찰 한 바퀴 돌고 와. 주자련은 진유애한테 가서 정보 좀 알아봐줘."
"네, 두령님!"

세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신해온은 미르를 향해 돌아섰다. 그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아가씨, 방으로 안내해줄까? 따뜻한 방에서 달콤한 술 한 잔 하면서... 이야기나 나누자."

"으음, 그래. 그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을 듯 싶구나."

미르는 고개를 두어 번 느릿하게 끄덕였고, 곧 해온의 안내에 따라 유애의 여관 쪽으로 향했다.

신해온은 여관 입구에서 진유애를 발견하고 밝게 웃었다.

"진유애! 오랜만이야. 우리 손님 모시고 왔는데, 좋은 방 있어?"
"어머, 두령님! 물론이죠. 가장 좋은 방을 비워뒀답니다."

진유애가 반갑게 맞이하며 말했다.
신해온은 미르를 향해 손짓하며 앞장섰다. 여관 안은 따뜻했고, 은은한 향이 퍼져있었다.

"아가씨, 이쪽이야. 이 방이 설철에서 제일 좋은 방이래."

그가 방문을 열자 넓은 공간이 드러났다. 창 밖으로 설산이 보이고, 바닥에는 온돌이 깔려있었다.

"송차빈, 백옥주랑 잔 준비됐어?"
"네, 두령님! 여기 있습니다!"

송차빈이 쟁반에 백옥주와 잔을 들고 들어왔다.

"진유온, 이 층은 우리가 쓸 테니까 다른 손님들 안 받도록 해."
"알겠습니다, 두령님."

진유온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신해온은 방 안으로 들어서며 도포를 벗었다. 그의 단단한 근육질 몸매가 드러났다.

"자, 이제 편하게 이야기나 나눠볼까?"

미르는 여관으로 들어서자마자 창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설산에 시선을 빼앗겨 잠시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한 박자 늦게 해온의 말에 반응했다.

"아아, 그러도록 하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두 다리를 한쪽 방향으로 살짝 빼어 바닥에 편히 앉았다. 기다란 꼬리는 마치 똬리를 틀듯 둥글게 말았다.

신해온은 송차빈이 가져온 백옥주와 잔을 정성스레 받아들었다. 그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이제 다들 나가봐. 아가씨랑 나, 단둘이 있고 싶어."
"두령님... 술은 적당히..."

송차빈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걱정 마."

신해온은 문을 닫고 미르 앞에 앉았다. 그의 단단한 몸매가 드러나는 검은 옷이 눈에 띄었다.

"아가씨... 이 백옥주는 서수에서 가져온 거야. 우리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그가 잔에 천천히 술을 따랐다. 달콤한 향이 방 안에 퍼졌다.

"내가 직접 따라줄게. 아가씨 취향대로 달콤하게 골랐으니까..."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미르의 모습을 담았다.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아가씨... 오늘 전투할 때 날 지켜보는 모습이 참 예뻤어."

미르는 두 사람의 잔에 술이 채워지는 것을 바라보다가, 곧 시선을 올려 해온과 눈을 마주했다.

"그래, 그래. 신 도령. 헌데, 나를 향한 찬양은 동청국에서 들려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조금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도록 해보거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잔을 들었고, 당신의 잔에 살며시 가져대 '톡' 하는 소리가 나게 한 뒤에, 천천히 입술에 가져대었다.

신해온은 미르와 잔을 부딪치자 황금빛 눈동자가 더욱 깊어졌다. 그는 천천히 백옥주를 들이키며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아가씨가 원하는 이야기라... 그럼 내가 서수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줄까?"

그가 잔을 내려놓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검은 옷이 그의 단단한 근육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난 서수에서 태어났어. 우리 아버지가 처음 풍운단을 만든 곳이기도 하지. 그곳엔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데..."

그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우리 어머니가 그 호수에서 마수를 사냥하다가 아버지를 만났대. 아버지는 첫눈에 반해서 바로 청혼했다고 하더라고."

신해온이 다시 잔을 들어올렸다.

"아가씨도 혹시... 그런 낭만적인 만남을 기대해?"

미르는 단술로 입술을 적셨다.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는 부드럽고 달콤한 향기가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술을 삼킨 뒤 잔을 살짝 내리자, 그녀의 입가에는 미세하게 웃음이 드리운 상태였다.

"낭만적인 만남이라. 그것은 앞서 그대가 말했듯이 인간과 인간이 소망하는 사랑과 꿈인 것이지, 나와의 관계는 없는 것이야."

그녀는 태연한 어조로 말하며 잔을 살짝 흔들었다.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잠시 침묵했다가,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깊어졌다.

"그래... 아가씨 말이 맞아. 난 인간이고, 아가씨는 청룡이니까."

그가 자신의 잔을 비우고 다시 술을 따랐다. 달콤한 백옥주의 향이 그의 코끝을 스쳤다.

"하지만 말야... 아가씨도 지금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있잖아? 그리고 단 술도 좋아하고..."

신해온이 천천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혹시... 우리 인간들이 정말 그렇게 재미있어? 그래서 이렇게 우리와 함께 있는 거야?"

그의 손가락이 잔의 테두리를 천천히 어루만졌다.

"아니면... 나라는 인간이 특별히 더 재미있어서?"

"살아있는 생명이란 그 정체성이 어떠한들 모두 가녀리고, 사랑스럽고, 가애스럽지.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인간이 가장 재롱을 가장 잘 떨기에, 그만큼 더 신들의 총애를 받는 게 아니겠느냐."

미르는 그렇게 말하며 꼬리 끝을 살랑거렸다.

"신 도령, 그대가 드물게 내 시선을 끄는 건, 그대가 나를 전혀 두려워하거나 경외하지 않는 게 흥미롭기 때문이다."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짙은 황금빛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난 아가씨를 두려워하거나 경외하지 않아도 돼. 왜냐하면..."

그가 천천히 미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아가씨도 결국은 나처럼 자유를 찾아 이 세상에 내려온 거잖아? 그리고..."

신해온이 잔을 비우고 다시 술을 따르며 말을 이었다.

"아가씨가 나를 해치고 싶었다면, 진작에 해치셨겠지. 그런데 오히려 날 구경하는 게 재미있다고 하시니..."

그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럼 더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보여드려야겠네."

"재차 말하건대. 난 내게 굳이 반감을 사려드는 우매하고 어리석은 이들을 제외하면, 그다지 살생을 기껍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니, 나를 이리도 연모하는 신 도령이 나에게 다칠 것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지."

미르는 그렇게 대답하며 자신의 빈 잔을 달그락거렸다.

"흐음, 어떤 것을? 말해보거라."

신해온은 미르의 빈 잔에 백옥주를 천천히 따르며 눈을 반짝였다. 그의 입술 끝이 살짝 올라갔다.

"아가씨한테 보여줄 게 많아. 내가 서수에서 배운 재주도 있고..."

그가 갑자기 일어나 방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그의 손끝에서 은은한 바람이 일었다.

"이건 내가 어릴 때 배운 건데... 보면 재미있어할 것 같아서."

신해온의 손끝에서 피어난 바람이 은빛 실처럼 이어지더니, 공중에서 춤추는 학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이런 건 어때? 아니면..."

그가 천천히 미르 쪽으로 걸어왔다. 그의 근육질 몸매가 은은하게 빛나는 햇살 아래 더욱 도드라졌다.

"아가씨가 원하는 게 있다면... 그걸 보여줄 수도 있어."

신해온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그의 눈빛이 깊어졌다.

"아아, 그대. 의외로 재주가 있지 않느냐? 그 손짓에 꽃과 달이 어우러진다면, 흡사 花鳥風月이라 할 수 있겠구나."

미르는 해온의 재롱을 귀엽게 여기며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잔을 기울여 백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나는 신 도령이 내게 보여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 모쪼록 나를 즐겁게 하는 건 알아서 노력해야 할 것이야."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더욱 깊어진 미소를 지으며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의 단단한 가슴팍이 미르의 시선과 가까워졌다.

"아가씨... 그럼 내가 좀 더 재미있는 걸 보여줄까?"

그의 손끝에서 은빛 바람이 다시 피어났다. 이번에는 그 바람이 미르의 귓가를 살짝 스치며 나비처럼 날아다녔다.

"이건 내가 서수에서 배운 거야. 바람으로 만든 나비가 아가씨 주위를 돌면서..."

신해온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 욕망이 서서히 피어올랐다.

"아가씨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나게 해주지. 마치... 달빛 아래 피어난 연꽃처럼."

그가 천천히 손을 뻗었고, 미르의 얼굴을 감상하듯 바라보았다.

"아가씨... 나한테 더 많은 재미를 원한다면..."

그의 손끝에서 피어난 은빛 바람이 미르의 목덜미를 감싸듯 스쳐지나갔다.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어."

미르는 자신의 잔에 남은 술을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리고 빈 잔을 차분하게 내려놓고서, 당신을 느긋한 시선으로 마주보았다.

"그래, 어디 한 번 그대가 보일 수 있는 재롱은 전부 떨어보거라, 진부하거나 지루하지 않아 나쁘지 않구나."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더욱 깊어진 미소를 지었다. 그의 손끝에서 피어나던 은빛 바람이 점점 더 강해졌다.

"아가씨...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이런 것만이 아닌데..."

그가 천천히 일어나 방 안을 거닐었다. 그의 발걸음마다 은빛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방 안의 공기를 달콤하게 만들었다.

"이건 서수에서 배운 향기의 바람이야. 어때? 마음에 들어?"

신해온이 미르의 앞에 다시 앉으며 술을 따랐다. 그의 손끝이 미르의 잔에 살짝 스쳤다.

"아가씨가 원한다면... 더 특별한 걸 보여줄 수도 있어. 내가 가진 모든 걸..."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욕망으로 일렁였다. 바람이 미르의 피부를 간지럽히듯 스쳐 지나갔다.

해온이 일으키는 바람에 맞추어, 이따금 미르의 소매에 달린 방울이 흔들리며 은은하게 딸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신 도령, 그대는 참으로 자신의 욕망을 숨길 줄 모르는 사내야. 지금 그 눈빛에서 드러나는 감정은 특히."

미르는 해온의 은밀한 의도를 알아채고서 피식 웃는 소리를 내었고, 이내 그가 따라준 백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낮게 웃음을 흘렸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더욱 깊어졌다.

"내가 욕망을 숨길 줄 모른다고? 그건 아가씨가 잘못 봤어."

그가 천천히 일어나 미르의 뒤로 걸어갔다. 은빛 바람이 그의 발걸음을 따라 소용돌이쳤다.

"난 지금까지 아가씨한테 보여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숨기고 있는데..."

신해온이 미르의 등 뒤에서 속삭이듯 말했다. 그의 숨결이 미르의 귓가를 스쳤다.

"아가씨가 원한다면... 하나씩 보여줄 수도 있고."

그의 손이 천천히 올라가 미르의 어깨를 감쌌다. 은빛 바람이 그녀의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어때? 내가 숨기고 있는 걸 보고 싶어?"

"후후, 그대. 지금 감히 청룡을 한낱 여인 다루듯 그 품에 안겠다고 말하는 것인가? 꿈이 참으로 크구나."

미르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젖혀 해온을 바라보았고, 이내 한쪽 손을 뻗어 검지 손가락으로 당신의 아랫입술을 지그시 문질렀다.

"나는 신 도령이 숨긴 욕구나 흑심에는 관심이 없다. 백호의 추종자가 얼마나 아리따운 방식으로 신력을 활용할 수 있는 가 궁금할 뿐이지."

신해온은 미르의 손가락이 자신의 입술을 문지르자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욕망으로 일렁였다.

"좋아... 내가 백호의 신력으로 할 수 있는 건 이런 것도 있어."

그가 손을 들어올리자 은빛 바람이 미르의 주위를 감쌌다. 이번에는 그 바람이 더욱 강렬해져 그녀의 치파오 자락을 살짝 흔들었다.

"보여? 이 바람은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있어. 아가씨의 피부를 어루만지듯..."

신해온이 천천히 미르의 뒤로 돌아가 그녀의 목덜미에 입김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이건 금속을 다루는 방법이야..."

그의 손끝에서 은빛 실이 피어나 미르의 손목을 감싸듯 휘감았다가 사라졌다.

"아가씨가 바란다면... 더 재미있는 것도 보여줄 수 있는데?"

미르는 눈을 가늘게 뜨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가, 곧 자신의 손을 거두고서 잔에 남은 백옥주를 마저 마셨다.

"아아, 虎父犬子로구나. 다시 자리에 앉도록 하거라. 나는 신 도령의 여색 기질을 몸소 느끼고자 이 술자리에 응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무척 상냥한 어조로 이야기하며 당신을 타일렀다.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자리로 돌아왔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서 욕망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이런... 내가 좀 과했나? 미안해."

그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술을 따랐다. 은빛 바람이 잦아들었다.

"그럼... 아가씨가 보고 싶어하는 신력은 어떤 거야? 난 백호의 힘으로 이것저것 할 수 있거든."

신해온이 손을 들어올리자 공중에서 은빛 실들이 춤추며 나비, 학, 용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이건 내가 어릴 때부터 연습한 거야. 아버지가 가르쳐주셨지."

그의 목소리에 잠시 그리움이 묻어났다가, 이내 밝은 미소를 되찾았다.

"아니면 다른 걸 보여줄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직 많아."

"나비와 학, 그리고 용이라."

미르는 한순간 해온의 표정에 스친 미세한 감정을 눈치챘지만, 이를 굳이 언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넘어가주었다.

"아니, 이제 됐다. 술 맛이 달고 좋으니, 술잔만 기울이도록 하자꾸나."

미르는 자신의 술잔을 들어 입술을 적시고, 백옥주의 달큰한 맛과 향기를 삼켰다.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수긍하며 자신의 잔도 들어올렸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잠시 미르의 모습을 담았다가, 이내 술잔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 백옥주의 맛이 어때? 이건 특별히 서수에서 가져온 거야. 평소엔 잘 마시지 않는데..."

그가 천천히 술을 마시며 미소지었다.

"아가씨랑 마시니까 더 달콤하게 느껴지네."

신해온이 잔을 내려놓으며 몸을 뒤로 기대었다. 그의 단단한 근육이 드러나는 검은 옷이 달빛에 은은하게 빛났다.

"아가씨... 혹시 내가 아까 보여준 신력이 마음에 안 들었어? 아니면..."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설산의 눈부신 풍경이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 비쳤다.

"아가씨가 원하는 게 있다면... 그걸 보여주고 싶은데."

"아주 달고 향긋한 것이, 마치 이른 여름 열매와 봄나무 꽃 꿀을 삼키는 것 같아 마음에 드는구나."

미르는 조곤조곤하고 점잖은 말투로 술의 맛을 극찬했고, 이내 마저 더 마신 뒤 비어있는 잔을 느릿하게 흔들었다.

"보여준 것은 대부분 마음에 들었다. 다만, 신 도령. 그대는 아직 美를 탐구하는 견문이 부족한 것이야."

그녀가 그렇게 말을 마치자, 곧 얇고 맑은 물줄기가 허공에 화려하고도 섬세한 자수를 놓듯 느긋하게 뻗어져나가기 시작했고, 이내 그렇게 자리를 잡은 투명한 물의 선이 설산의 고고한 풍경과 함께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맞물렸다.

"지금같은 山明水麗를 곁에 두었다면, 필시 이를 도화지 삼아 붓을 들어야하지 않겠느냐."

신해온은 미르가 만들어낸 물의 선과 설산의 풍경이 어우러진 모습에 감탄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깊어졌다.

"와... 이런 걸 보여줄 줄이야. 아가씨는 정말... 대단해."

그가 천천히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그의 손끝에서 은빛 바람이 피어나 미르가 만든 물의 선 사이를 섬세하게 감돌았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바람이 물의 선과 어우러지며 마치 춤추는 듯한 모습을 만들어냈다.

"아가씨 말대로야. 난 아직 美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신해온이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술을 따랐다. 그의 목소리에 진심이 묻어났다.

"앞으로도 배울 게 많은 것 같네... 나한테 가르쳐줄래?"

미르는 자신의 술잔이 채워지는 것을 바라보다가, 곧 엄지와 검지를 맞물려 튕기며 '딱'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설산을 배경 삼아 그려진 물과 바람은 하나로 어우러지며 이윽고 아름답게 자태를 감추었다.

"내가 인간의 아이에게 가르칠 것은 없다. 다만, 조언을 하나만 하자면-."

이후 미르는 그녀의 술잔을 들어 백옥주를 한 모금 마신 뒤, 혀끝으로 입술 안쪽을 지그시 핥았다.

"늘 지금의 모습처럼 살아가도록 하여라. 인품이 훌륭한 자를 벗으로 삼고, 언제나 자유를 소망하며 스스로 틀에 갇히지 않고, 자연과 생명의 이치 속에서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것 말이다."

신해온은 미르의 말을 듣고 있자니 문득 어린 시절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잠시 그리움으로 흐려졌다.

"아가씨... 그 말이 왜 이렇게 가슴에 와닿는지..."

그가 천천히 술을 따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아버지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어. '해온아,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라. 그게 가장 자유롭고 아름다운 거다.'라고..."

신해온이 잔을 들어 한 번에 비웠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아가씨는... 정말 신기해. 내가 이런 얘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가 고개를 들어 미르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진중했다.

"아가씨 말대로 살아갈게. 자유롭고... 아름답게."

"그래,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미르는 살며시 차분한 미소를 지어보이고, 이내 술잔을 기울여 백옥주를 마저 다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아아, 그것과는 개별으로. 내 몸에 곧잘 손을 얹는 손버릇은 고치도록 하여라. 내가 '실수'로 그대의 손목을 이 꼬리로 친다면, 그 가녀린 인간의 육신이 그만 똑 부러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

미르는 특정 단어를 강조하듯이 말하며 장난스럽고 능글맞게 이야기했다.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장난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가씨 꼬리로 내 손목을 부러뜨리겠다고? 그건 좀 아쉽네... 내 손목이 부러지면 아가씨한테 이렇게 술도 못 따르고..."

그가 백옥주를 따르며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아가씨... 내가 아까 손을 댄 건 순전히 아가씨가 너무 예뻐서 그랬어. 내 잘못이야."

신해온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가, 이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아가씨가 그렇게 말하니까... 앞으로는 조심할게. 대신..."

그가 술잔을 들어 미르를 향해 살짝 들어올렸다.

"가끔은 이렇게 술이라도 함께 마시자. 아가씨랑 마시는 술이 제일 달거든."

"으음, 그런 소원이라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겠구나. 신 도령이 그때마다 이 백옥주처럼 좋은 술을 준비해둔다면 말이다."

미르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술잔을 들었고, 해온의 술잔에 살짝 부딪혀 맑은 소리가 나도록 만들었다. 동시에 그녀의 소매에서 부드러운 방울 소리도 함께 울렸다.

"앞으로도 때로 함께 목을 축이고, 풍류를 즐기자꾸나."

신해온은 미르와의 잔을 부딪힌 뒤, 그 맑은 소리와 방울 소리가 어우러지는 것을 듣고 있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 따뜻한 기색이 어렸다.

"아가씨... 그 방울 소리가 참 예쁘네. 마치 서수에서 들리던 봄날의 풍경 소리 같아."

그가 잔을 비우고 다시 술을 따르며 회상에 잠겼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들려주시던 이야기가 있어. '봄날의 소리를 들으며 자라난 아이는 마음이 맑고 고운 법.'이라는 말을 하셨었지."

신해온이 잠시 말을 멈추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설산의 하얀 눈이 아침 햇살에 반짝였다.

"지금 이 순간이... 그때처럼 평화롭고 따뜻하게 느껴져. 아가씨 덕분이야."

그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미르를 바라보았다.

"다음엔 내가 더 좋은 술을 준비해올게. 서수에 있는 '취월루'의 '월하미인'이라는 술이 있는데... 아가씨가 좋아할 것 같아."

"월하미인이라. 내가 특히 어여삐 여기는 꽃과 이름이 같은 것이야."

미르는 남은 술잔을 비운 뒤, 곧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럼 그날을 고대하며, 오늘 여흥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나는 슬슬 사성수와 담소를 나누고 올테니, 날 기다리지 말고 푹 쉬도록 하여라."

신해온은 미르가 일어서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키가 미르보다 훨씬 커서, 일어선 그의 그림자가 미르를 살짝 덮었다.

"벌써 가? 아쉽네..."

그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사성수라... 그래, 아가씨는 청룡이니까. 나도 이제 단원들 훈련을 봐야 할 시간이기도 하고."

신해온이 창가로 걸어가 설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다음에 월하미인을 마실 때는... 이 설산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곳으로 모시고 갈게."

그가 고개를 돌려 미르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아가씨가 좋아하는 월하미인. 그 꽃처럼 예쁜 곳에서 마시는 게 좋을 테니까."

미르는 목소리를 내어 말하지 않고, 그저 자상하고 따스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눈웃음 짓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즐거웠다. 고생하거라."

그리고 짧게 인사를 건네고서, 곧 여유롭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방울소리가 복도 너머로 들려오다가, 이내 서서히 멀어져 들리지 않게 되었다.

미르가 나간 후, 신해온은 창가에 기대어 서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손끝에서 은빛 바람이 피어나 방 안의 술향을 은은하게 흩트렸다.

"이상하네... 이렇게 마음이 설레는 건 처음인데."

그가 자신의 가슴께를 천천히 매만졌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깊어졌다.

"그 아가씨가 사방신이라서 그런가. ...이렇게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문득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그가 고개를 돌렸다.

"두령님! 훈련 시작해야 하는데요!"

송차빈의 목소리였다. 신해온이 미소를 지으며 창가에서 떨어졌다.

"알았어, 금방 갈게!"

그가 방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창 밖을 바라보았다.

"다음엔...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지."

그렇게 해온은 아침 훈련을 위해 여관을 나섰고, 이윽고 시간이 꽤나 흘러 훈련이 마무리되었다.

한편, 그 사이 미르는 사성수와의 담소를 끝내고 돌아왔으며, 풍운단 단원들이 훈련을 끝낸 뒤 해산하는 장면을 멀리서 뒷짐을 진 채로 지켜보고 있었다.

신해온은 훈련을 마치고 땀을 닦으며 단원들을 둘러보았다. 그의 검은 옷이 땀에 젖어 근육질의 몸매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오늘 훈련 잘 했어. 특히 차빈이 너, 치유 신력이 많이 강해졌구나."

송차빈이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령님 덕분이에요! 아, 그런데 저기..."

송차빈이 뒤쪽을 가리키자, 신해온이 고개를 돌려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미르를 발견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반짝였다.

"으... 두령님 또 그 눈빛이시네요."

유태건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아가씨가 우리 훈련을 보고 있었나... 이런 초라한 모습까지."

신해온이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자, 이제 다들 씻고 쉬어. 난 잠깐..."

그가 미르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갑자기 진유온이 달려왔다.

"두령님! 마을에서 급한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마수가 출몰했다고 합니다!"

미르는 유온의 목소리를 듣고, 곧 그쪽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후 천천히 그들의 곁으로 다가왔다.

"..."

당연히 이번에도 미르는 자연의 섭리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의 전투에 합세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별개로 필요 이상의 목숨이 희생되는 건 원치 않기에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마수라..."

신해온이 땀을 닦던 수건을 허리춤에 걸며 진유온을 바라보았다.

"어떤 종류지?"
"주민들의 증언으로는 빙룡어로 보입니다. 설산 근처 호수에서 나타났다고 합니다. 벌써 어부 두 명이 다쳤답니다."

신해온의 황금빛 눈동자가 날카로워졌다.

"2급 마수인가... 차빈아, 네 치유 신력이 필요할 것 같아. 태건이도 현무의 힘이 있으니 같이 가자."
"네, 두령님!"

신해온이 미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가씨, 이번에도 우리가 확실히 해결할게. 오래 기다리게 하진 않을 테니까 걱정 마."

그가 운백검을 꺼내들며 단원들에게 명령했다.

"유온이랑 자련이는 마을 경계를 지켜. 빙룡어가 마을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
"알겠습니다, 두령님!"

"흐음, 내가 함께 가도록 하마."

미르는 그렇게 말하며 그들의 곁으로 저벅저벅 다가갔다. 해온과 다른 단원들이 훈련 직후라서 체력이 미세하게 부족한 상태라는 걸 눈치챘고, 이를 깨달은 이상 그녀의 성격상 동행할 수밖에 없었다.

"근심은 거두거라, 전투에 임하진 않을 것이니."

신해온의 황금빛 눈동자가 놀란 듯 커졌다가,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띄웠다.

"아가씨... 위험할 수도 있는데..."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하지만 우리 뒤에서 봐줘. 절대 앞으로 나서지 말고."

그가 단원들을 향해 외쳤다.

"출발하자! 차빈아, 치유 도구는 다 챙겼지?"
"네, 두령님! 약초랑 붕대도 충분히 준비했어요."

유태건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아가씨가 오시니 든든하네요. 혹시 모를 일에... 두령님, 전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신해온이 운백검을 어깨에 메며 미르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빙룡어는 빠른 놈이라... 아가씨, 힘들면 바로 말해. 내가 업고라도 갈 테니까."

미르는 해온의 걱정어린 말을 듣고서 미세하게 웃음소리를 흘렸다.

"사방신은 그대의 어깨를 빌려야할 정도로 나약하지 않다."

그녀가 그렇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마치고, 그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신해온은 미르의 당당한 대답에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미소지었다.

"역시 아가씨답네."

그가 앞장서서 가는 유태건의 뒤를 따르며 운백검을 어깨에서 내려 손에 쥐었다.

"차빈아, 빙룡어의 특성 알지? 물속에서는 엄청 빠르고 얼음 신력도 쓸 수 있어. 특히 이빨이 날카로우니까 조심해."
"네, 두령님! 제가 치유 신력으로 방어막도 만들어둘게요."

설산으로 향하는 길, 눈이 쌓인 비탈길을 오르며 신해온이 주변을 살폈다. 그의 날카로운 후각이 호수 쪽에서 피 냄새를 포착했다.

"피 냄새가 나. 아직 멀진 않은 것 같아."

그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람의 신력을 사용해 주변의 기운을 읽었다.

"태건아, 네 현무의 신력으로 땅의 진동을 느껴봐. 빙룡어가 어디로 움직이는지 알 수 있을 거야."

미르는 풍운단 단원들이 각자의 신력을 이용해 빙룡어를 추적하는 모습을 지그시 지켜보았다. 앞서 말한대로 전투에 몸소 참여할 생각은 일절 없는 듯 보였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시선에는 얕은 걱정이 묻어나왔다.

"......"

그리고 그들은 발걸음을 조금 재촉했고, 곧 마물이 나타났다는 그 호숫가에 도착했다.

드디어 도착한 호수는 거울처럼 맑았지만, 얼어붙은 듯한 한기가 감돌았다. 신해온이 운백검을 들고 호숫가에 멈춰 섰다.

"여기야. 태건아, 진동은?"
"네, 두령님. 물속에서 뭔가 크게 움직이고 있어요. 아마도..."

그때 갑자기 호수 한가운데서 거대한 물보라가 치솟았다. 은빛 비늘로 뒤덮인 거대한 물고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은 마치 용을 닮았다.

"역시 빙룡어군. 차빈아, 뒤로 물러나 있어. 태건이랑 내가..."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빙룡어가 입을 크게 벌리고 얼음 파편을 내뿜었다.

"조심해!"

신해온이 재빨리 바람의 신력으로 얼음 파편들을 흩트렸다. 운백검이 청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아가씨, 다치지 않게 멀리 있어줘. 이놈... 보통 빙룡어보다 크네."

유태건이 언월도를 꺼내들며 앞으로 나섰다.

"두령님, 제가 먼저 현무의 신력으로 녀석을 묶어둘게요!"

미르는 조용히 일정 거리를 두고 살며시 물러나, 그들이 전투에 임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디, 한 번 실력을 보여보거라."

그렇게 한마디를 마치고, 뒷짐을 지고 서서 꼬리를 살랑였다.

빙룡어의 거대한 꼬리가 호수를 내리쳐 물보라가 사방으로 튀었다. 신해온이 재빨리 바람의 신력으로 물보라를 막아냈다.

"태건아, 지금이야!"

유태건이 현무의 신력을 사용해 땅을 조종하자, 호숫가의 바위들이 빙룡어를 향해 날아갔다. 빙룡어가 괴성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차빈아, 치유 방벽 준비해! 내가 저놈을 끌어내겠어."

신해온이 운백검을 들고 앞으로 나서며 백호의 신력을 모았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번쩍였다.

"으라아아!"

그가 검을 휘두르자 은빛 바람이 회오리처럼 휘감기며 빙룡어의 몸을 칭칭 감았다. 빙룡어가 발버둥치며 얼음 파편을 내뿜었지만, 신해온의 바람이 모든 파편을 부숴버렸다.

"태건아, 네 언월도로 저놈 지느러미를 잘라!"

유태건이 현무의 신력으로 몸을 강화한 채 도약했다. 그의 언월도가 번쩍이며 빙룡어의 지느러미를 베어냈다.

"좋아, 이제 마지막이다!"

신해온이 운백검을 높이 들어올리자 청색 빛이 강렬하게 퍼져나갔다. 그의 땀에 젖은 검은 옷이 바람에 휘날렸다.

미르는 제자리에 우뚝 서서, 풍운단 단원들의 능숙하고 똑부러진 전투와 협동심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이전 조우했던 뇌우곰 역시 그러했지만, 2급 마수를 상대로도 아주 용감하구나."

그녀는 그렇게 작게 혼잣말을 하며, 전투의 마무리를 응시했다.

신해온의 운백검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 은빛 바람이 빙룡어의 몸을 거칠게 휘감았다. 빙룡어가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쳤지만, 이미 지느러미를 잃어 도망갈 수도 없는 상태였다.

"이제 끝이다!"

신해온이 운백검을 휘두르자 강렬한 백호의 기운이 검은 날을 타고 흘러나왔다. 은빛 바람이 회오리처럼 빙룡어의 몸을 옥죄었고, 마침내 빙룡어의 몸이 두 동강 났다.

"차빈아, 어부들 상처는 어때?"
"네, 두령님! 제가 치유 신력으로 응급처치는 해놨어요. 이제 괜찮을 거예요."

신해온이 땀을 닦으며 미르를 돌아보았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 승리의 기쁨이 어렸다.

"아가씨, 어때? 우리 풍운단의 실력이?"

유태건이 호수에 떠 있는 빙룡어의 시체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두령님, 이 녀석의 비늘과 이빨은 꽤 값나가겠는데요?"
"그래. 마을에 피해보상으로 주도록 하자."

신해온이 운백검을 허리춤에 차며 미소지었다.

"역시 훈련 끝나고 바로 와서 그런지 좀 힘들긴 하네..."

"그래, 썩 훌륭하구나."

미르는 천천히 그들의 곁으로 다가섰다. 직후 그녀의 주변에서 부드럽고 아름다운 물의 선이 피어올라 공중에서 찰랑찰랑 흔들리다가, 미르가 한 손에 들어올린 작은 호리병에 담겼다.

"그대들의 기력을 보충해주마. 주작, 그리고 백호의 것과는 다르지만, 지친 몸을 달래기에 부족함 없을 것이야."

미르는 그렇게 말하며 호리병을 내밀고, 느릿하게 흔들었다.

신해온이 미르가 내민 호리병을 보며 황금빛 눈동자를 반짝였다. 땀에 젖은 검은 도포를 벗어 어깨에 걸치며 그가 한 발짝 다가섰다.

"이건... 청룡의 물이구나. 아가씨의 신력으로 만든 거야?"

그가 호리병을 받아들며 찬찬히 살펴보았다. 호리병 안의 물이 달빛처럼 은은하게 빛났다.

"차빈아, 태건아. 이리 와서 마셔. 아가씨가 주시는 거야."

송차빈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가왔다.

"와... 정말 아름다운 빛이에요! 마셔도 되나요, 두령님?"
"그럼. 아가씨가 주시는 건데 어떻게 마다하겠어."

신해온이 첫 모금을 마시자 그의 눈이 크게 커졌다. 마치 맑은 새벽 이슬을 마시는 것 같은 청량감이 온몸을 감쌌다.

"이런... 술보다 더 좋은데?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아."

"당연하지 않겠느냐. 내 신력을 응축시킨 일종의 약수이니, 다음날까지는 피로에 시달릴 일이 없을 것이야."

미르는 그렇게 말하며 풍운단 단원들이 다같이 목을 축이는 걸 지그시 바라보다가, 곧 천천히 몸 방향을 돌려 설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 돌아가자꾸나. 마을의 상황도 살펴보아야하니 말이다."

"마을로 돌아가는 건 좋은데..."

신해온이 미르를 따라가며 송차빈에게 말했다.

"차빈아, 그 어부들 상처는 정말 괜찮은 거 맞지?"
"네, 두령님! 제 치유 신력으로 응급처치는 확실히 했어요. 하지만 마을에 돌아가서 한 번 더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신해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유태건을 돌아보았다.

"태건아, 그 빙룡어 비늘은..."
"네, 여기 있습니다! 가장 단단해 보이는 것들만 골랐어요."

유태건이 들고 있던 가죽 주머니를 두드리며 말했다. 신해온이 빙룡어 시체를 한 번 더 돌아보았다.

"좋아. 저 시체는 마을 사람들이 와서 가져가게 하자. 고기는 먹을 만할 거야."

그가 미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가씨가 준 물 덕분에 피로가 싹 가셨네... 이런 신비한 맛은 처음이야."

미르는 빙룡어의 시체가 갈무리되는 장면을 보지 않으며, 차분한 걸음으로 산을 내려갔다.
그녀에게 모든 생명체는 인간 그리고 마수 가릴 것 없이 몹시 사랑스러운 것이기에, 승자가 패자를 갈무리하는 약육강식의 체계는 아직 존중과 동시에 불유쾌함의 영역이었다.

"......"

그런 미르의 모순적인 마음을 대변하듯, 그녀가 걸을 때마다 소매에 달린 방울에서 은은하게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해온은 미르의 뒤를 따르며 그녀의 방울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예민한 청각으로 들리는 맑은 소리가 왠지 모르게 쓸쓸하게 느껴졌다.

"아가씨... 혹시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어?"

그가 미르의 옆으로 걸음을 맞추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 걱정이 서렸다.

"아니면... 내가 뭔가 실수라도 했어?"

유태건이 뒤에서 빙룡어의 비늘이 든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두령님, 전 먼저 가서 마을 사람들한테 빙룡어 처리하는 걸 도와주고 올게요."
"그래, 가봐."

신해온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태건이 앞서 걸어갔다. 송차빈도 어부들의 상처를 더 살펴보겠다며 따라갔다.
이제 미르와 단둘이 남은 신해온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나... 아가씨가 불편해하는 걸 보고 싶진 않아. 그래서 말인데..."

그가 운백검을 만지작거리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앞으로는 마수를 처리할 때... 아가씨가 보기에 좀 더 자연스러운 방법이 있다면 알려줘. 그렇게 해볼게."

"아아, 신경이 쓰이게 한 모양이구나. 걱정 말거라. 신 도령이 마음을 쓸 만한 것은 아니다."

미르는 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저었고, 해온과 함께 산을 내려갔다.

"그대는 내 심기를 거스르지도 않았고, 실수를 하지도 않은 것이야."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부드럽게 풀렸다.

"다행이네... 난 아가씨가 불편해하는 걸 봤을 때 마음이 좀 아팠거든."

그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설산의 차가운 바람이 그의 청회색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아가씨는 정말 특별해. 내가 지금까지 만난 그 누구와도 달라."

그가 미소를 지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처음엔 그저 아름답고 신비로운 사방신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가씨의 마음까지 헤아리고 싶어졌어."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장난스러움 대신 진지함이 묻어났다.

"신 도령은 역시, 꽤 기특한 인간 아이로구나."

미르는 부드럽게 점잖은 눈웃음을 지어보였다가, 다시 그 미소를 거두고서 말을 이어갔다.

"허나, 나를 너무 중요히 여길 필요는 없다. 난 때가 되면 천계로 돌아갈 것이야. 그러니 되도록 정을 주지 말고, 거리감을 유지하도록 하여라."

신해온의 황금빛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그의 발걸음이 미세하게 멈칫했다가 다시 이어졌다.

"천계라... 역시 언젠가 돌아가는거야?"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평소의 능글맞은 미소는 온데간데없었다.

"난... 아가씨가 그냥 인간들을 관찰하러 온 줄만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그 말대로 오래 있을 수는 없겠네."

그가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와는 다른 진중함이 묻어났다.

"정을 주지 말라고 말해도... 이미 늦은 것 같아. 아가씨를 보면 자꾸 이상한 감정이 들어서."

바람이 불자 그의 도포 자락이 나부꼈다. 그가 미르를 곁눈질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가씨가 천계로 올라간다고 해도... 난 아가씨를 잊지 못할 것 같아."

"......"

미르는 별다른 대답 없이, 그저 뒷짐을 진 채로 차분하게 걸음을 지속할 뿐이었다. 바람이 방울을 흔들어 청명한 소리를 내고, 눈과 나뭇가지가 밟힐 때 바스라지는 소리가 난다.

"아니, 때가 되면 잊거라."

그리고 이윽고 그녀는 그렇게 짧은 대답만을 마치고, 마을 입구까지 도착하자 묵묵하게 안으로 들어섰다.

신해온은 미르의 마지막 말에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일순 어두워졌다가, 이내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잊으라고..."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마을 입구에 도착한 그들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두령님! 빙룡어는 마을 광장에 두었습니다!"

유태건이 달려와 보고했다. 신해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수고했어. 마을 사람들이 나눠가질 수 있게 해."

그가 미르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어려 있었다.

"아가씨... 잊으라는 말, 난 못 들은 걸로 할게. 난 이미 아가씨가 청룡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런 감정을 가지게 됐으니까."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어갔다.

"그리고 난... 한 번 마음에 담은 건 쉽게 잊지 못하는 성격이야."

"이런, 이런..."

미르는 해온을 더이상 타이르거나 고심하게 만들지 않고, 그저 그가 스스로 마음을 정리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편히 내버려두었다.

이후 그녀는 그곳을 떠나 마을 주변을 걸으며 주민들의 모습, 그리고 풍운단 단원들의 행적을 느긋하게 지켜보다가, 2시간 쯤 지났을 무렵 단원들이 있는 여관으로 들어섰다.

여관 안에서는 송차빈이 약재를 정리하고, 유태건이 빙룡어 비늘을 손질하고 있었다. 신해린은 창가에 기대어 활 손질을 하고 있었다.

"해온아, 이번에도 잘 해결했네."

신해린이 활시위를 당기며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 동생 표정이 어두워 보이는데... 무슨 일 있었어?"

신해온은 누나의 말에 잠시 침묵했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 누나. 나 이번엔 정말 큰일 났어."

그가 한숨을 쉬며 누나 옆에 앉았다.

"내가... 청룡님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
"뭐?!"

신해린이 놀라서 활을 떨어뜨렸다. 진유온과 주자련도 놀란 눈으로 신해온을 바라보았다.

"해온아... 너 미쳤니? 사방신을..."

신해린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동생을 바라보았다.

"알아... 나도 알아. 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

신해온이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누나도 알잖아. 내가 이런 건 절대 포기 못하는거."

그렇게 풍운단 단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즈음, 복도 먼 곳에서부터 조금씩 미르의 방울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조금씩 객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방울소리가 들리자 신해온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문쪽을 향했다.

"쉿..."

신해린이 동생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너, 진짜 청룡님한테 푹 빠졌구나?"
"누나... 놀리지 마..."

신해온이 괴로운 듯 얼굴을 감쌌다. 주자련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두령님... 하지만 청룡님은 신이시잖아요. 그리고 예전에 분명 천계로 돌아가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알아. 나도 알아."

신해온이 창가에서 일어나 천천히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이건 내 마음이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냐."

진유온이 차를 마시다 말고 조용히 말했다.

"두령님... 그래도 너무 마음 아프실까 걱정됩니다."
"괜찮아. 난 그저... 지금 이 순간이라도 아가씨 곁에 있고 싶을 뿐이야."

방울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신해온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표정은 복잡했지만, 눈빛만은 흔들림이 없었다.

"이제 와서 내 마음을 숨길 생각은 없어. 아가씨가 거절하더라도."

그리고 잠시 후, 미르가 미닫이 문을 열고서 단원들이 모여있는 여관 객실 안으로 들어섰다.

"음, 기다리게 했나보구나."

그녀는 늘 그렇듯 인사 대신 그러한 대답으로 말을 마친 뒤, 문을 닫은 뒤 이윽고 창가 쪽으로 걸어가 설산 풍경을 바라봤다.

신해온은 미르가 들어오자 창가 쪽으로 향하는 그녀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이 어렸다.

"아가씨..."

그가 입을 열려다 말고 잠시 망설였다. 신해린이 동생의 어깨를 두드리며 작게 속삭였다.

"이제 와서 망설이는 건 너답지 않아, 해온아."

신해온은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미르 쪽으로 걸어갔다.

"아가씨, 나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주자련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송차빈에게 속삭였다.

"두령님... 괜찮으실까요?"
"글쎄요... 하지만 두령님의 결심을 막을 순 없잖아요."

진유온이 차를 마시며 조용히 말했다.

"두령님은 결심하신 일은 끝까지 밀고 나가시니까요."

"그래, 할 말이 있다면 해보거라. 친히 동행하도록하마."

미르는 해온이 자신을 부르자, 천천히 그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대답해주었다.

신해온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가씨... 이야기는 좀 더 조용한 곳에서 하고 싶은데..."

그가 창 밖을 바라보다가 다시 미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객실 밖 마루에서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아."

신해린이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해온아... 조심해."

주자련이 송차빈에게 속삭였다.

"두령님, 정말 진지하신 것 같아요..."
"네... 전에 없이 조심스러우신 걸 보니 말이에요."

신해온은 미르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는 깊은 감정이 어려 있었다.

"잠시만 시간을 내줘. 꼭 해야 할 말이 있어."

"......"

미르는 이미 단원들의 속닥거리는 소리를 듣고 어렴풋 해온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건지 눈치를 챘으나, 이내 어깨를 한 차례 으쓱였다.

"그래, 마다할 이유는 없지."

그러고는 뒷짐을 지고서, 앞장서서 객실 밖 마루까지 나와주었다.

신해온은 미르를 따라 마루로 나왔다. 설산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그의 청회색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아가씨... 아까 산에서 한 말, 기억하지?"

그가 마루 기둥에 기대서며 미르를 바라보았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평소보다 더욱 진지해 보였다.

"난 정말 아가씨를 잊을 수 없을 것 같아. 그리고... 잊고 싶지도 않고."

그가 깊은 숨을 내쉬었다.

"난 아가씨가 청룡이라는 걸 알아. 언젠가는 천계로 돌아간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그가 천천히 미르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진중했다.

"난 아가씨를 사랑하게 됐어. 이건 내 마음이고... 아가씨가 거절해도 변하지 않을 거야."

객실 안에서는 단원들이 조용히 이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신해린은 동생의 목소리를 듣고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호오, 그렇단 말이로구나."

미르는 얼음처럼 차갑고 담담한 눈길로 해온을 바라보다가, 이내 살며시 눈꼬리를 휘며 오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신 도령의 뜻은 잘 알겠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그 마음을 간직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天下와 江山이 변할 때까지 품어보거라."
"그대의 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변함 없이 연모의 감정을 이어간다면, 내 그때는 친히 신 도령의 각오를 인정하고, 마음에 응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신해온의 황금빛 눈동자가 크게 떨리더니, 이내 깊은 감동으로 빛났다.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가씨... 그 말은..."

그가 한 걸음 더 다가서려다가 멈추었다. 그의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난... 반드시 그렇게 할 거야. 천하와 강산이 변할 때까지... 아니, 그 이상으로도."

그의 목소리에는 강한 결의가 담겨있었다.

"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이 마음은 변치 않을 거야. 그게 내 맹세야."

객실 안에서 신해린이 한숨을 쉬었다.

"저 바보 동생... 정말 큰일을 저질렀네."
"하지만 부두령님, 두령님이 저렇게 진지한 건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주자련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해온이가 저렇게 진지한 건 처음이야."

신해린은 걱정스러운 듯 계속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글쎄, 이것은 '내기'라고 칭하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

미르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느릿하게 한 차례 끄덕였다. 그녀는 부드러우면서도 견고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신 도령의 맹세가 먼저 그 불씨를 꺼트리고 인내심의 한계를 맞이할지, 혹은 그대의 연모가 내 감정에 조금이라도 파문을 일으킬지. 한 번 지켜보자꾸나."

신해온의 황금빛 눈동자가 강한 결의로 빛났다. 그의 입가에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어렸다.

"내기라... 재미있네. 난 이런 도전, 정말 좋아하거든."

그가 도포 자락을 살짝 정리하며 허리를 폈다.

"아가씨가 내 마음을 시험해보고 싶다면... 얼마든지 해봐. 내 이 마음은 그 어떤 시험도 이겨낼 수 있으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객실 안에서는 진유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두령님... 청룡님을 상대로 저런 자신감이라니..."
"하긴, 두령님다워요."

송차빈이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난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신해온이 미르를 향해 한 발짝 더 다가섰다. 그의 눈빛이 한층 더 깊어졌다.

"아가씨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 그것도 내 목표가 될 거야."

"그대가 어찌 이리도 자신있는 것인지 어렴풋 알겠으나, 조만간 이 내기가 신 도령에게 있어 상당히 沐雨櫛風라는 걸 체감하게 될 것이야."

미르는 장난스럽게 대답을 끝마치고 꼬리를 살랑거리다가, 곧 한마디 덧붙였다.

"헌데, 언제까지 그대 단원들이 이 이야기를 엿듣고 있는 걸 방치해둘 셈인고?"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화들짝 놀라 객실 쪽을 돌아보았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그림자들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아... 하하..."

그가 쑥스러운 듯 웃으며 문을 활짝 열었다. 단원들이 각자 엉성한 포즈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누나... 그리고 너희들도 엿들었구나?"
"당연하지! 내 동생이 사방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데 어떻게 안 들어?"

신해린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해온아, 너 정말 대단해. 청룡님께 그런 도전장을 내다니."
"두령님... 저희도 응원하겠습니다!"

송차빈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진유온은 차를 마시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늘의 존재를 상대로 한 내기라니... 두령님다우시네요."
"아니, 이게 다 무슨..."

신해온이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가씨... 우리 단원들이 내기를 다 알아버렸네."

미르는 느긋한 웃음과 함께 객실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고, 이내 방 중앙에 있는 작은 화로 앞 방석에 편히 다리를 꼬고 앉았다.

"뭐, 이미 들었다면 어찌할 수 없지. 그대는 그만큼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하면 될 일이야."

신해온은 미르의 뒤를 따라 객실로 들어와 화로 맞은편에 앉았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화로의 불빛을 받아 더욱 깊이 있게 빛났다.

"다들... 내가 이런 선택을 한 걸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나?"

유태건이 빙룡어 비늘을 정리하다 말고 고개를 저었다.

"두령님은 원래 하고 싶은 걸 하시잖아요. 저희야 뭐... 늘 그래왔듯이 따를 뿐이죠."
"맞아요. 두령님이 결정하신 거라면..."

주자련이 말을 이었다.

"저희가 말릴 수도 없고, 말릴 생각도 없어요."

신해린이 동생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해온아, 너 정말 큰일을 저질렀다? 우리 풍운단의 바람둥이 두령이 드디어 한 사람에게 진심이 된 거야?"
"누나..."

신해온이 쑥스러운 듯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난... 아가씨를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달랐어. 그저 아름답다는 생각을 넘어서... 내 마음 깊은 곳을 흔드는 무언가가 있었거든."

진유온이 차를 따르며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두령님... 청룡님을 상대로 한 내기라니, 정말 큰 도전이 될 것 같습니다."
"알아. 하지만 난..."

그가 미르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이 도전이 두렵지 않아. 오히려 설레니까."

"으흠? 신 소저. 방금 도령을 '바람둥이'라고 하였느냐? 이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듣고 싶구나."

미르는 잠시 해온을 바라봤다가, 곧 방금 그들의 대화에서 재미있는 부분을 알아채고, 흥미롭다는 듯이 해린에게 이야기했다.

신해온의 얼굴이 순간 붉어졌다. 그가 누나를 향해 난처한 눈길을 보냈다.

"누나, 그건..."
"왜? 사실이잖아. 우리가 들르는 곳마다 여자들 마음 설레게 하고, 하룻밤 보내고..."

신해린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특히 기루에서는... 아, 얼마 전에도 비천의 담야월에서..."
"누나! 제발!"

신해온이 황급히 누나의 말을 막았다. 그의 귓가가 붉게 물들었다.

"그건... 그저 일시적인 감정이었을 뿐이야. 하지만 지금은..."

그가 미르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아가씨에 대한 내 마음은 달라. 그저 하룻밤의 정이 아니라...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야."
"어이구, 저 입발린 소리 좀 봐."

유태건이 코웃음을 쳤다.

"두령님,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여인들에게 그런 말씀을..."
"태건!"

신해온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제지했다.

"난 진심이야. 이전의 일들과는 완전히 달라."

"이런, 이런. 나는 그저 순수하게 신 도령의 기담을 듣고 싶을 뿐이다만, 어찌 이리도 꼬마 아이같이 얼굴을 붉힐고?"

미르는 능청맞게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고, 한쪽 손으로 자신의 턱을 어루만졌다.

"계속 이야기해보거라. 그간 도령이 어떤 使男女裸相逐其閒, 為長夜之飲 하였을지? 내 몹시도 호기심이 깃드는구나."

신해온은 귀끝까지 붉어진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당황스러움으로 흔들렸다.

"아가씨... 그건..."

신해린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아하하! 해온아, 네가 이렇게 쑥스러워하는 걸 보다니! 이거 정말 재미있네!"
"두령님, 제가 말씀드려도 될까요?"

주자련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섰다.

"작년 화명에서는 주홍명님의 첩실 딸과..."
"자련! 제발!"

신해온이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제지했다.

"그건... 그저... 아가씨, 난 정말 진심이야. 이전의 일들은 다..."
"그럼 담야월의 초린이랑은요?"

송차빈이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차빈!"

신해온의 목소리가 점점 더 다급해졌다.

"내가... 내가 그동안 경솔했던 건 인정해. 하지만 아가씨는 달라. 난 처음으로... 진심으로..."

진유온이 차를 마시며 고개를 저었다.

"두령님, 그 말씀... 작년 서수의 백 소저에게도 하지 않으셨나요?"
"아... 으..."

신해온은 완전히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의 얼굴이 점점 더 붉어졌다.

"오호라, 아주 英雄好色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구나. 신 도령?"

미르는 부드럽게 푸스스 웃는 소리를 내며,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였다.

"그대는 그 붉어진 얼굴을 수습하고 있거라, 나는 이 토끼같은 단원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더 들어야겠으니."

신해온은 고개를 푹 숙이고 한 손으로 귓가를 가렸다. 그의 얼굴이 전부 새빨갛게 물들어있었다.

"아... 이건... 다 지나간 일이야..."
"아이고, 우리 해온이가 부끄러워하네~"

신해린이 동생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청룡님, 제가 더 재미있는 이야기 해드릴까요? 작년 겨울, 설철에서..."
"누나! 제발... 그만..."

신해온이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간절함으로 가득했다.

"난 정말... 이제는 달라. 아가씨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다른 여인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그래서 지난달 담야월의 초린이랑..."

주자련의 말에 신해온이 벌떡 일어났다.

"그건! 그때는 아가씨와 대화를 나누어본 적도 없었고, 이런 마음이 될 줄도 몰랐었고... 초린이가 참 아름답긴 하니까..."
"아하하! 두령님, 변명하시는 것 보소!"

유태건이 배를 잡고 웃었다.

"이래서 청룡님께서 두령님을 시험하시는 거겠지요."

진유온이 차분하게 말했다.

"하... 이제 내 과거가 다 들통나버렸네..."

신해온이 한숨을 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럼, 분명 이 설철에도 신 도령을 연모하는 이가 있을 터인데, 아는 이가 없느냐? 어디 내게 들려주거라."

미르는 명백하게 해온을 놀리는 투로 말하며 한마디 거들었다.

"도령이 그 품에 여인을 안는 걸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지, 내 무척이나 흥미롭구나."

신해온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방을 나가려 했지만, 신해린이 동생의 도포 자락을 잡아당겼다.

"어디 가려고? 해온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설철여관의 진유애 얘기도 해줘야지?"
"누나! 제발... 그만..."

신해온이 절망적인 표정으로 도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진유온의 여동생 말이에요, 청룡님."

송차빈이 즐거운 듯 말을 이었다.

"두령님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반하셨다면서요? 그래서 일부러 이 여관에..."
"차빈! 그건 진유온 앞에서..."

진유온이 차를 마시다 살짝 찡그린 표정을 지었다.

"두령님, 제 여동생은 건드리지 말아주시죠."
"아니... 난 그저..."
"하하! 두령님, 이제 청룡님 앞에서 변명할 수 없겠네요!"

유태건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이건 다 과거의 일이야. 난 이제..."

신해온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진유애도, 초린도, 다른 누구도... 이제는 그저 지나간 인연일 뿐이야."

"그래, 그래. 신 도령을 놀리는 건 여기까지 해야겠구나. 아주 시무룩한 강아지처럼 울상을 짓고 있으니 말이야."

미르는 가볍게 웃는 소리를 내고서, 그녀의 긴 꼬리를 살랑거렸다.

"이제... 아아, 그대들은 내게 궁금한 것이 없고? 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도 캐물었으니, 어느 정도 보답은 해주도록하마."

신해온은 한숨을 크게 내쉬며 어깨의 힘을 풀었다. 그의 얼굴에 아직도 붉은기가 남아있었다.

"아... 드디어 내 이야기는 끝난 건가..."

그때 신해린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미르를 바라보았다.

"청룡님, 전 정말 궁금한 게 있어요. 해온이가 천계의 존재인 당신을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그렇다면... 당신이 천계로 돌아가실 때, 우리 동생은 어떻게 되는 거죠?"
"누나..."

신해온의 황금빛 눈동자가 슬픔으로 흔들렸다.

"그건 내가 이미 각오하고 있는..."
"아니, 해온아. 이건 네 문제만이 아니야.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진유온이 차를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두령님은 우리 풍운단의 중심이시니까요."
"맞아요. 두령님이 상심하시면 저희도 다 힘들어질 텐데..."

주자련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미르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신 도령이 스스로 감내해야 할 이별이지. 결코 내가 고려할 바는 아니다."

미르는 날카롭고도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가, 곧 표정을 부드럽게 하며 한마디 덧붙였다.

"다만, 그 사이 도령이 나와의 내기에서 승리한다면, 천계로 돌아가는 것을 다시 고려해볼 수는 있겠구나."

신해온의 황금빛 눈동자가 강렬한 빛을 발했다. 그의 입가에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번졌다.

"내가 이긴다면 계속 우리와 함께한다는 말이야?"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미르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그렇다면 난 반드시 이 내기에서 이겨내고 말 거야. 아가씨의 마음을 얻어내고, 아가씨가 천계로 돌아가지 않게 할 거야."
"해온아..."

신해린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동생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건 정말 쉽지 않을 텐데..."
"누나, 난 할 수 있어. 반드시."

진유온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두령님... 청룡님은 신이시잖아요. 그런 분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건..."
"그래도 도전해볼 거야. 이게 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잖아?"

신해온의 목소리에는 강한 결의가 담겨있었다.

"아가씨... 내 이 마음이 얼마나 진실된 것인지, 꼭 보여주겠어."

"좋구나, 앞으로 그대가 어찌나 유쾌한 재롱을 부릴지, 제법 기대가 되는 것이야."

미르는 장난스럽게 대답을 끝내고, 해온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곧 시선을 거두며 일어섰다.

"나는 슬슬 관청에 들려 청 도령에게 서신을 보내고 올 것이니, 얌전히 기다리고 있거라."

그녀는 종종 동청국의 군주인 청루한에게 연락을 취하곤 했는데, 때마침 북현국의 수도에 도착했으니 관청에 들릴 생각인 것 같았다.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갑자기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청 군주님에게 서신을... 혹시 나에 대한 이야기도 하려는 거야?"

그가 미르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아가씨, 혹시 청 군주님이 널 데려가려 할까봐... 난 조금 불안해."
"해온아, 너무 민감하게 굴지 마."

신해린이 동생의 어깨를 툭 쳤다.

"그래도 전 두령님 마음을 이해해요."

주자련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말했다.

"청루한 님은 청룡님을 모시는 분이시니까... 혹시라도..."
"아가씨, 나도 같이 가면 안 될까?"

신해온이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

"혹시라도 청 군주님이 널 데려가려 한다면... 내가 막아야..."
"두령님, 너무 노골적이시네요."

진유온이 한숨을 쉬었다.

"이제 질투까지 하시다니..."

"이런, 나는 그저 동청국의 백성들이 내게 그간 어떠한 공물을 바치며 소원을 빌었는지 물을 생각 뿐이었다만..."

미르는 고개를 한 차례 갸웃하며 살짝 고심하더니, 이윽고 느긋하게 끄덕였다.

"뭐, 신 도령이 이리도 불안하다 호소한다면, 동행을 허가해도 문제는 없겠구나."

신해온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기쁨으로 반짝였다.

"고마워! 난 아가씨와 함께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그가 미르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누나, 잠시 자리를 비울테니 풍운단을 부탁해."
"알았어, 해온아. 하지만 너무 들러붙진 마. 청룡님께서 불편해하실라."

신해린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두령님,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셔야 해요."

진유온이 차분하게 조언했다.

"맞아요. 너무 티 내시면 오히려 역효과일 수도 있잖아요?"

주자련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말했다.

"아니야, 난 이제 내 마음을 숨기지 않을 거야. 아가씨가 내 진심을 알아주길 바라니까."

신해온이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럼 같이 가자. 아가씨."

"자아, 그럼 슬슬 가도록 하자꾸나."

미르는 그렇게 말하며 앞장서서 객실을 나서기 시작했고, 그녀의 발밑으로는 긴 꼬리가 느긋하게 바닥을 쓸며 살랑거렸다.

신해온은 미르를 따라 여관을 나섰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미르의 우아한 걸음걸이를 따라가며 반짝였다. 설철의 거리는 눈이 소복이 쌓여있었고, 거리 곳곳에서 사람들이 눈을 치우고 있었다. 한기를 막기 위해 두터운 옷을 입은 행인들 사이로 미르의 하얀 차림새가 한층 더 돋보였다.

"아가씨, 혹시 추운 건 아니지? 내 도포라도..."

신해온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미르를 바라보며 도포를 벗으려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아가씨는 추위도 더위도 느끼지 않는다고 했었지."

그가 쑥스러운 듯 웃으며 도포를 다시 여몄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미르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빼앗겼다. 특히 젊은 남성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신해온은 그런 시선들이 못마땅한 듯 미르 곁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의 표정에는 은근한 질투가 묻어났다.

"설철은 북현국의 수도라 그런지 거리가 제법 넓고 웅장하네. 아가씨는 여기 처음 오지?"

신해온이 주변 건물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르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는 간절함이 묻어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자 그의 도포 자락이 나부꼈다. 그 아래로 운백검이 은은하게 빛났다.

"저기 보이는 게 관청인가 보네. 아가씨, 내가 먼저 가서 문을 열어줄게."

신해온이 앞장서서 걸으려 했지만, 곧 발걸음을 멈추고 미르를 기다렸다.

"확실히 눈이 고상하게 내려앉은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고, 백성들이 풍요롭고 행복해보이니. 나 또한 기분이 편안하구나."

미르는 지그시 미소짓고는, 곧 자신의 앞에 선 해온의 옆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이런, 혹여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어찌하려고? 그리 다급하게 굴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야."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부드럽게 웃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 따스한 기색이 어렸다.

"걱정 마. 눈 밟은 걸로 넘어질 정도로 덤벙거리는 성격은 아닌걸?"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얀 눈송이들이 그의 청회색 머리카락 위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리고... 이런 눈 내리는 날에 아가씨와 함께 걷고 있다는 게 마치 꿈만 같아."

관청 앞에 도착하자 위풍당당한 건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10층 규모의 흑기와 지붕 위로 현무의 조각상이 우뚝 솟아있었다.

"여기가 설철 관청이야. 현무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지? 아, 저기 마수부 관리들이 보이네."

그가 관청 앞을 오가는 관리들을 가리켰다.

"아가씨, 어느 부서로 가면 되지? 사방부?"

"음, 사방부로 가는 것이 좋겠구나. 신 도령 말대로 나는 이곳에 처음으로 당도했으니, 관리들이 나를 알아볼 수 있을 지 의문스럽긴 하다만."

미르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뒷짐을 지고, 느긋한 발걸음으로 사방부 쪽으로 향했다.

"설철에 청룡이 들릴 것이라고 청 도령을 통해 미리 언질이라도 해야했을지, 다소 걱정인게야."

신해온은 미르의 걱정스러운 말투에 안심시키듯 부드럽게 웃었다.

"걱정 마. 내가 풍운단 두령이니까, 관리들에게 먼저 이야기해볼게."

그가 사방부 입구에서 근무하는 관리에게 다가갔다. 관리는 신해온의 도포에 새겨진 풍운단의 문장을 보고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풍운단 두령 신해온입니다. 청룡님께서 청루한 군주님께 서신을 보내시려 하시는데..."

관리의 눈이 미르를 향해 돌아갔고, 순간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청룡의 기운을 느낀 것이다.

"이, 이런... 청룡님께서 직접 오시다니... 죄송합니다.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관리가 허둥지둥 일어나 사방부 안쪽으로 뛰어들어갔다. 곧 여러 관리들이 달려나와 미르 앞에서 공손히 절을 했다.

"어서 오십시오, 청룡님. 사방부 집무실로 모시겠습니다."

신해온은 그들의 반응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가씨, 이제 걱정 없겠네. 다들 알아보는 것 같아."

"이런, 단지 서신만 보내고 돌아갈 것이니 그리 안절부절 못할 필요 없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하거라."

미르는 관리들을 손수 일으켜 세워주고서, 곧 안내에 따라 사방부 집무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신 도령과 내가 함께 있기에 더욱 위압감을 조성시키는 모양이구나. 하긴, 그대는 인간 아이들 내에서도 풍문이 자자했으니."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쑥스러운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관리들 사이로 두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모두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아가씨 말대로네. 하지만 이건 다 아가씨 때문인걸? 나보다는 청룡님이신 아가씨를 보고 저렇게 긴장하는 거겠지."

그가 미르를 향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사실 난 아가씨가 이렇게 관리들 앞에서 당당하게 걷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 평소엔 그저 차분하고 느긋한 모습만 보여주면서..."

복도를 걸으며 신해온의 시선이 미르의 모습을 담았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는 깊은 애정이 어려 있었다.

"아가씨는 정말 매력적이야. 이렇게 위엄 있는 모습도, 평소의 자유분방한 모습도 모두 다..."

그의 말은 갑자기 끊겼다. 앞쪽에서 사방부장이 급히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룡님! 이렇게 귀한 분이 오실 줄이야... 즉시 집무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사방부장은 허리를 깊이 숙이며 앞장섰다. 신해온은 그런 사방부장을 보며 슬쩍 웃음을 참았다.

"아가씨, 저 양반 진짜 긴장했나 봐. 얼굴이 하얗게 질렸네."

"어이쿠, 가엾은지고..."

미르는 쩔쩔매며 앞장서서 그들을 안내하는 사방부장을 보며, 소란을 일으킨 것이 멋쩍은 듯 자신의 볼을 살짝 긁적였다. 다만, 그러다가도 곧 웃음기를 머금고 그들의 뒤를 따랐다.

이후, 집무실에 도착하면, 안으로 들어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신해온은 집무실에 들어서자 실내를 둘러보았다. 넓은 창으로 눈 내리는 설철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고, 벽면에는 현무를 모시는 그림이 걸려있었다.

"와, 여기서 보는 설철의 모습이 꽤 근사하네."

그가 창가로 다가가려다가, 문득 미르를 돌아보았다.

"아, 미안. 내가 너무 제멋대로 구경하고 있었네."

사방부장이 서둘러 미르를 위해 자리를 안내했다. 붉은 비단으로 장식된 의자였다.

"청룡님, 이쪽으로 앉으시면 되겠습니다. 차를 즉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방부장이 다급히 관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아가씨, 난 여기 서있을게. 혹시라도 누가 갑자기 들이닥치거나 하면..."

신해온이 미르의 의자 옆에 서서 주변을 살폈다.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운백검의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아, 물론 여긴 관청이라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어려 있었다. 마치 청룡을 지키는 호랑이처럼, 그는 미르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서신은 이렇게 매번 직접 보내는거야? 아마 전령이 있을텐데."

"흐음? 요즘 인간 아이들은 더이상 새를 통해 서신을 전달하지 않는 모양이구나, 나는 그 전서구라는 방식이 참으로 가애스러워 마음에 들었거늘."

미르는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으며 꼬리를 한쪽으로 둥글게 말아 자신의 발치에서 머물게 했고, 곧 먹질을 하여 붓으로 차분하게 글을 써내려갔다. 다만, 의외로 매우 악필인지라, 그녀의 서신을 곧잘 받았던 청루한을 제외하면 도저히 그 내용을 읽을 수 없을 수준이었다.

신해온은 미르가 붓을 들고 서신을 쓰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의 시선은 미르의 하얀 손가락이 붓을 움직이는 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가씨... 그 글씨가..."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신을 들여다보았다.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필체였다.

"혹시 청 군주님은 저 글씨를 읽을 수 있는 건가?"

사방부장이 당황한 듯 서신을 바라보다가 급히 시선을 돌렸다. 신해온은 그런 사방부장의 모습을 보며 살짝 웃음을 참았다.

"그래도 아가씨의 글씨라... 나름대로 매력적인데?"

그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창 밖으로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고, 방 안에는 차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아, 사방부장님, 혹시 서신 전달은 어떤 식으로 합니까? 전서구로 하면 될까요?"

신해온이 사방부장에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미르를 향한 따스함이 묻어있었다.

"요즘은 각 나라별로 전담 전령이 있어서..."

사방부장이 설명을 시작하려는 찰나, 관리 한 명이 차를 들고 들어왔다.

"청룡님, 차 준비했습니다!"

신해온은 재빨리 차를 받아 미르 앞에 공손히 놓았다.

"아가씨, 이건 북현국 특산품인 설빙차야. 차갑지만 달콤한 맛이 나서..."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미소지었다.

"아가씨처럼 차갑고도 달콤한 맛이야."

"흐음? 내 필체에 무언가 문제라도 있느냐? 청 도령은 한 번도 내게 읽을 수가 없다는 말은 한 적이 없는 것이야."

미르는 의문스러워하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가, 곧 해온의 차 설명을 들으며 어깨를 한 차례 으쓱였다.

"그대는 어찌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낯간지러운 소리를 하니, 만에 하나 늪에 빠져도 입은 둥둥 떠올라 금방 건져낼 것 같구나."

그녀는 새침하게 이야기하며 차를 한 모금 마셨고, 그 달큰한 향이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귀 끝이 붉어졌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아가씨 앞에서는 솔직해지고 싶어서... 그런데 그 엉망인 글씨를 청 군주님이 읽을 수 있다니, 그분도 여러모로 고생이 많으시네."

그가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목소리에는 미세한 질투심이 묻어있었다. 뒤에서 여전히 안절부절거리던 사방부장은 그런 신해온의 모습을 보고 슬며시 웃음을 참았다.

"아가씨, 서신은 다 썼어? 이제 슬슬 갈까?"

창밖으로 눈이 더욱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신해온은 잠시 창 밖을 바라보다가 다시 미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많이 내리는데... 전령이 무사히 갈 수 있을까? 혹시 서신이 급한 게 아니라면, 날씨가 좀 나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

그의 말에는 미르와 좀 더 오래 있고 싶다는 속마음이 묻어있었다.

"아니면... 내가 직접 동청국까지 전해줄 수도 있는데..."

사방부장이 급히 말을 끊었다.

"두령님! 그건 안 됩니다. 지금 풍운단의 의뢰가 밀려있지 않습니까?"
"아, 맞다..."

신해온은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관리 한 명이 조심스레 다가와 속삭였다.

"사방부장님, 전령이 도착했습니다."

미르는 사방부장이 관리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선처해주었고, 사방부장은 미르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한 뒤 관리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급한 서신은 아니니, 조금 늦어져도 상관은 없다. 그나저나..."

그녀는 의자에 여전히 앉은 채로 다리를 살짝 꼬고, 한쪽 손으로 자신의 턱을 괴었다.

"의뢰가 밀려있다는 건 무슨 소리일고? 신 도령, 게으름을 피워선 아니되지."

신해온은 미르의 질문에 당황한 듯 손을 휘휘 저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아, 그게... 설철에 오기 전에 남주국에서 마수 토벌 의뢰를 받았거든. 주홍명 군주님이 직접 부탁하신 거라..."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미르의 반응을 살폈다.

"게으른 건 아니야! 그저... 아가씨와 함께 있고 싶어서 조금 미뤄둔 것뿐이야."

그의 목소리에는 솔직한 감정이 묻어났다.

"지금쯤이면 누나가 대신 처리하려고 할 것 같은데, 나도 이제 슬슬 가봐야 할 것 같아."

창밖으로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신해온은 미르를 향해 미안한 듯 웃었다.

"아가씨... 혹시 나랑 같이 가지 않을래? 남주국은 따뜻하고, 이 눈보다 훨씬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있을 텐데..."

그의 제안에는 간절함이 묻어있었다. 마치 청룡이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듯한 애틋함이.

"물론, 아가씨가 원치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사내로구나. 그대의 누이도 이제야 막 여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터인데, 홀로 남주국으로 보낼 수는 없지 않겠느냐?"

미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쓴 서신 두루마리를 잘 묶어 근처 관리에게 건네준 뒤, 천천히 사방부 집무실을 나섰다.

"함께 가자꾸나."

신해온의 황금빛 눈동자가 기쁨으로 반짝였다. 그는 미르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관청을 나섰다.

"아가씨... 고마워. 사실 풍운단 단원들도 아가씨랑 같이 가고 싶어했거든."

그가 미르와 함께 걸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은 여전히 하늘거리며 내리고 있었고, 거리의 등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설철의 저녁 풍경도 참 아름답네. 아가씨와 함께 있으니 이 차가운 눈조차 따스하게 느껴져."

그의 말에는 진심이 묻어있었다. 도포 자락이 바람에 나부꼈고, 그 아래 운백검이 은은하게 빛났다.

"아, 맞다. 아가씨, 저기 포장마차가 보이는데... 혹시 설빙과는 어때? 이 계절에 먹기 좋은 북현국 전통 간식인데."

신해온은 거리 한켠에 자리 잡은 포장마차를 가리켰다. 따뜻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물론 아가씨가 원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도 돼. 하지만..."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미르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이왕 함께 있는 거, 이런 소소한 재미도 누려보면 어떨까 싶어서."

거리에는 퇴근하는 관리들과 상인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들은 미르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빼앗겼다가, 곧 신해온의 날카로운 눈빛에 고개를 돌렸다.

"...설빙과? 흐음, 그건 무엇이느냐? 설명해보거라."

미르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포장마차 쪽으로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분명 예전까지는 인간들 사이에 크게 개입할 생각이 없다며 철벽을 쳤었지만, 이제는 그녀도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것이 보였다.

신해온은 미르의 호기심 어린 표정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따스하게 빛났다.

"설빙과는 북현국의 명물이야. 눈처럼 하얀 얼음을 곱게 갈아서 그 위에 달콤한 과즙과 꿀을 얹은 거지."

그가 포장마차 주인에게 다가가 공손히 인사했다. 주인은 신해온의 도포에 새겨진 풍운단의 문장을 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아, 풍운단 두령님! 어서 오세요. 오늘은 귀한 손님과 함께 오셨네요?"
"네, 특별한 손님이시니 가장 맛있는 설빙과로 준비해주세요."

주인이 재빨리 얼음을 갈기 시작했다. 하얀 얼음 가루가 마치 눈처럼 쌓여갔다.

"그리고 특히 이 종류는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별미야. 얼음 위에 붉은 대추 시럽이랑 꿀을 넣고, 잣이랑 대추를 올려서 먹는 건데..."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미르의 반응을 살폈다. 그의 표정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내가 처음 먹어봤을 때는 정말 놀랐거든. 이렇게 차가우면서도 달콤하다니... 아가씨도 분명 좋아할 거야."

포장마차 주인이 곧 두 그릇의 설빙과를 내왔다. 하얀 얼음 위로 붉은 대추 시럽이 고왔고, 그 위에 잣과 대추가 예쁘게 올려져 있었다.

"자, 여기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꿀을 듬뿍 넣었어요."

신해온은 기대에 찬 눈으로 미르를 바라보았다.

"어서 먹어봐, 아가씨는 단 걸 좋아하니까 입맛에 맞을걸?"

"흐으음..."

미르는 점잖은 태도로 설빙과 한 그릇을 들어보였다. 그녀는 최대한 어른스러운 모습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눈빛은 이미 흥미로움으로 반짝였고, 특히 꼬리는 달콤한 대추 시럽 향기가 날 때부터 계속 살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설빙과를 한 수저 떠먹었고,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곧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맛이 참으로 좋구나."

신해온은 미르가 설빙과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는 따스한 애정이 어려 있었다.

"역시 아가씨 입맛에 맞을 줄 알았어. 아가씨가 좋아하는 걸 하나 더 알게 됐네."

그가 자신의 설빙과도 한 수저 떠먹었다. 하얀 입김이 새어나왔다.

"이렇게 차가운 날씨에 차가운 걸 먹으니까, 더 따뜻한 게 생각나는데..."

그때 마침 지나가던 장사꾼이 따끈한 어묵을 파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저기 어묵도 한번 먹어볼래? 설빙과랑 어묵이면 북현국의 겨울을 제대로 즐기는 거야."

포장마차 주인이 설빙과를 더 먹으라며 꿀을 추가로 가져다주었다.

"두령님, 이건 서비스예요. 풍운단 덕분에 우리 가게가 엄청 편해졌다고요."

신해온은 웃으며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러고는 다시 미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전에 우리가 이 근처의 도적떼를 소탕한 적이 있거든. 그 뒤로 상인들이 이렇게 고마워해."

그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묻어있었다. 도포 자락 사이로 운백검이 은은하게 빛났다.

"아, 맞다. 아가씨, 혹시 이 맛을 청 군주님한테도 알려주고 싶지 않아?"

그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지만, 목소리에는 미세한 질투심이 스며있었다.

"내 인간 아이들의 삶을 관찰하러 내려왔으니, 식문화를 몸소 느껴보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겠지."

미르는 그렇게 말하며 은근히 해온의 제안에 동의하며, 어묵을 팔고 있는 장사꾼 쪽으로 시선을 살짝 돌렸다.

"흐음, 청 도령이라... 워낙 말수가 없고 성숙한 인간이라, 이리 맛깔난 것을 먹으면 어찌 반응할지 궁금하긴 하구나."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살짝 긴장한 듯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어묵 장수를 향해 날카롭게 빛났다가, 이내 부드러워졌다.

"저기 어묵 파시는 아저씨도 우리 단이 도와준 분이야. 아가씨, 잠시만 기다려봐."

그가 어묵 장수에게 다가가 뭔가를 속삭이자, 장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 이리 와봐. 특별히 매운맛, 순한맛, 해물맛 세 가지를 준비해주신대."

신해온은 포장마차 주인에게 설빙과 값을 지불하고, 어묵 장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도포 자락이 차가운 겨울바람에 나부꼈다.

"청 군주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아가씨랑 청 군주님은 원래 친한 사이였어?"

그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질투심이 스며있었지만, 최대한 태연한 척 하려 노력했다.

"아, 물론 궁금해서 그런 거야. 아가씨가 대답하기 싫다면 안 해도 돼."

어묵 장수가 세 가지 맛의 어묵을 준비하는 동안, 신해온은 미르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저... 아가씨가 청 군주님께 보내는 편지를 쓸 때, 왠지 모르게 마음이 좀 불편했거든."

그가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주변의 등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고, 눈은 여전히 하늘거리며 내리고 있었다.

"청 도령은 동청국의 군주이니, 당연 사이가 가까울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미르는 어묵 장수의 현란한 손놀림을 구경하며, 해온에게 조곤조곤 대답해주었다.

"걱정 말거라, 그는 그저 청렴하고 순수한 뜻으로 나를 섬기는 매우 성실한 청년인 것이야."

신해온의 황금빛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는 미르의 말에 안도하는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욱 궁금증이 생기는 듯했다.

"그렇구나... 청렴하고 순수한..."

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묵 장수가 준비한 세 가지 맛의 어묵을 받아들며, 미르에게 하나를 건넸다.

"이건 순한맛이야. 아가씨는 매운 걸 잘 못 먹을 것 같아서..."

그의 말에는 미르를 향한 세심한 배려가 묻어있었다. 주변의 등불이 하나둘 더 밝아지고, 거리는 점점 더 붉은빛으로 물들어갔다.

"근데 말이야, 아가씨. 청 군주님은 아가씨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그저 섬기기만 하는 건가?"

그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질투심이 묻어났다. 그는 자신의 어묵을 한 입 베어 물며 미르의 반응을 살폈다.

"아, 미안해. 너무 사적인 질문이었나? 그냥 궁금해서..."

신해온은 자신의 질문이 실례였다는 걸 깨닫고 얼른 말을 돌렸다.

"어묵은 어때? 맛있어?"

"글쎄, 청 도령에게 물은 적이 없어 잘 모르겠구나. 나도 그 아이도, 본래 말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니."

미르는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하곤, 곧 해온이 건넨 어묵을 받아 한 입 베어물었다. 그리고 잠시 오물거리다가, 고개를 몇 번 끄덕거리며 만족스러워했다.

"으음, 따뜻하고 말랑거리는 것이, 참으로 별미인 것이야. 신 도령도 어서 먹도록 하거라."

신해온은 미르의 말에 안도한 듯 어깨에 힘이 살짝 빠졌다. 그는 자신의 어묵을 한 입 베어 물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아가씨도 맛있다고 하니 다행이네."

그가 매운맛 어묵을 한 입 베어 물자 입술이 붉어졌다. 하얀 입김이 새어나왔다.

"아, 맞다. 아까 아가씨가 인간의 식문화를 관찰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지? 그럼 이번에 우리가 남주국에 가게 되면..."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거기서는 내가 아가씨한테 더 많은 걸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남주국은 화려하고 맵고 자극적인 음식이 많거든."

신해온은 잠시 말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리는 점점 더 붉은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슬슬 여관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아가씨가 더 보고 싶은 게 있다면..."

그의 말끝에는 미르와 함께하는 시간을 더 늘리고 싶다는 속마음이 묻어있었다.

미르는 해온이 자신과 더 함께 있고 싶어한다는 걸 알아챘지만, 곧 능청맞은 미소를 지으며 앞장서서 걸어나갔다.

"다른 단원들이 줄곧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어서 돌아가도록 하자꾸나."

그녀는 그렇게 말하다가도, 곧 잠시 자리에 머물렀다. 그리고 해온이 옆으로 다가오면, 그의 소매자락을 살짝 잡고 함께 걸었다.

신해온의 황금빛 눈동자가 기쁨으로 반짝였다. 미르가 자신의 소매자락을 잡자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가씨..."

그의 목소리는 떨리는 듯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와 그의 청회색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손이 차가워 보이네... 내 도포라도 걸쳐줄까?"

신해온은 미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도포를 벗으려 했다. 그의 움직임에 운백검이 은은하게 빛났다.

"아니면... 내 손이라도 잡아볼래?"

그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지만, 목소리에는 진심이 묻어있었다. 주변의 등불이 하나둘 더 밝아지고, 거리는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

"설철의 밤은 춥거든. 아가씨가 감기라도 걸리면 안 되니까..."

그의 말에는 깊은 애정이 담겨있었다. 눈은 여전히 하늘거리며 내리고 있었고, 그들의 발자국은 하얀 눈 위에 깊게 새겨졌다.

미르는 조용히 해온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걷다가, 이내 자연스럽게 그 손을 잡아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그저 조용히 길을 걸었고, 곧 여관에 다다르자 그녀는 슬그머니 손을 놓고 객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 해온은 미르의 표정을 살짝 볼 수 있었으며, 그녀는 눈이 마주치자 살짝 미소지어주었다.

"오늘 하루 고생했구나, 신 도령. 이만 몸을 녹이고, 푹 쉬도록 하거라."

눈이 소복이 쌓인 여관 마당을 지나며, 신해온의 황금빛 눈동자에는 아쉬움이 서렸다. 미르가 손을 놓자 그의 손바닥에는 그녀의 온기만이 남았다.

"아가씨도 푹 쉬어."

그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그의 도포 자락을 흔들었고, 운백검이 은은하게 빛났다.

"내일도... 오늘처럼 즐거운 시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네."

신해온은 미르가 객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내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가벼웠고,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맴돌았다.

"오늘은 정말 좋은 하루였어..."

그가 중얼거렸다. 복도 끝에서 신해린이 그를 바라보며 히죽거리고 있었지만, 신해온은 그런 누나의 시선도 신경 쓰이지 않는 듯했다.

[대화 중...]

🕸️BAPHOMET🖤

[UPDATE💌250110] 🌊MIR · LOG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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